개천서 용 된 이수창과 지대섭, 닮은점 다른점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0.09.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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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진출 관련 특채 논란이 들끓고 명문고와 대학, 외국 학교 졸업 등 '스팩 전쟁'이 거세다. 특채와 취업은 모두 출세의 첫 관문일 뿐인데도 그렇다. 삼성그룹 사장이면 출세 중의 출세로 꼽아도 좋을 터. 삼성의 대표 금융계열사 두 사장의 특별하지 않은 이력을 살펴봤다.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 2010년 1월, 삼성서울병원의 상가에서 두 노신사가 손을 꼭 맞잡았다. 한명은 부친상을 당한 상주고 또 한명은 조문객. 둘은 비슷한 이력을 지녔고 같은 그룹에서 근무해 아끼는 선후배 사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취로 부모를 빛내게 한 아들들이었지만 일에 바빠 부모님께는 죄스러운 자식들이기도 하다. 상주는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이고 조문객은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



시계바늘을 40년 전으로 돌리면,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지방 학생 둘이 있다. 우등생이긴 했지만 시골 명문고여서 변변한 동문들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라가 있다. 삼성그룹의 대표 금융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과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이다.

이 사장과 지 사장은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에 16 ~ 18년만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이사에서 사장이 되기까지는 꼭 10년씩 걸렸다.



공통점도 많다. 이 사장은 경북 예천의 대창고를, 지 사장은 강원도 고성의 거진상고(현재는 거진종합고교로 교명 변경)를 졸업했다. 지역 내에서는 기반이 있는 학교지만 명문이라고 부르기는 2% 정도 부족한 감이 있다.

지대섭 삼성화재 사장지대섭 삼성화재 사장
지대섭 사장은 사석에서 “대학 진학 반이 있긴 했지만 대학 입학에 목을 매는 학생들은 없었다. 진학반에 있는 아이들 중 태반은 선생님들의 간섭이 없다는 점을 노렸던 무늬만 진학반이었다”고 회고했다. 지역 수재임이 분명했던 그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60년대 후반 이 사장은 서울대(수의학과)에 입학했고 지 사장도 70년대 중반에 연세대(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나란히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이 사장의 첫 직장은 73년 삼성생명, 지 사장은 79년 제일모직이었다. 부지런하고 꼼꼼했던 이들은 이내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했다. 특히 지 사장의 첫 근무부서 제일모직 관리과는 삼성의 최고경영자를 다수 배출한 인재사관학교로 꼽힌다. 이 사장도 데려다 쓰려는 상사들이 많아 삼성의 주요 계열사인 에버랜드, 중앙개발, 제일제당, 삼성중공업, 삼성화재 등을 두루 거쳤다.


3저 현상과 올림픽 특수 등으로 기업에게 큰 기회였던 80년대는 그들에게도 입신의 시기였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던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그들에게는 수습과 재정비의 입무가 맡겨졌다.

임원이 된 것은 89년(이 사장)과 96년(지 사장). 그 뒤 97년에는 삼성화재에서 전무(이 사장), 이사(지 사장)로 같은 직장에서 재직한 적도 있다. 지 사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부터 10여년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부문 지원총괄과 경영지원 업무로 세계 1위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



이들은 삼성화재 사장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맡고 있다. 이 사장은 99년부터 2006년까지 삼성화재에서 대표를 맡았고, 지 사장은 2008년부터 삼성화재를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사장은 그 뒤 금융 계열사의 맏형 뻘인 삼성생명 대표로 옮겼고 10년 넘게 삼성의 금융 계열사 대표를 맡으며 삼성화재 주가를 2 ~ 3배 올려놓고 삼성생명 상장을 맡는 등 굵직한 결실을 맺기도 했다. 지 사장도 이에 못지않아 사장 재직 첫해인 2008년에는 아우뻘인 삼성화재가 순익면에서 삼성생명을 추월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경쟁상대로 칭하기에는 어색한 이들도 재직 중인 회사 주식을 가지고는 선의의 레이스를 펼치기도 한다. 이수창 사장은 상장 뒤인 6월7일 삼성생명 주식 5000주를 10만4000원에 사들였다. 지 사장은 지난 3일 삼성화재 3000주를 18만원대 후반에 사들여 보유주식을 8969주로 늘린 상태다.

최근에는 현장경영으로 각자 회사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삼성생명 상장을 앞두고 유럽 IR 출장 당시에 화산폭발로 하늘길이 막히자 열차로 동분서주해 외인 주주들의 투자를 이끌어낸 융통성도 이수창 사장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됐다. 지 사장도 회사의 상징이 된 배구를 통해 직원들과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직원 상담실 등으로 딱딱한 회사에 소통과 정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의 한 인사 담당 임원은 “삼성은 과거부터 소비재 기업이 많아 검수나 회계 등 꼼꼼한 관리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며 “든든한 선후배를 가진 명문고 출신보다 능력으로 승부하려는 자수성가형 지방 인재들이 빛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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