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척의 판옥선으로 적선 300척을 물리친 충무공과 백성의 마음이 자신이 아닌 이순신에게 가 있는 것을 두려워했던 선조. 라응찬 회장과의 불화설이 있던 터라 "이순신 장군의 처지와 지금 처지가 비슷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신 사장은 정색하며 "그런 말 말라"며 황급히 얘기를 끊었다.
라 회장 측근들은 "회장님도 놀랐다"고 말했다. 놀란 게 '배임' 때문인지, 검찰고소 사실을 뒤늦게 알았던 탓인지는 정확치 않다. 라 회장과 신 사장을 모두 아는 이들 역시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며 고개를 젓고 있다.
특히 신 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설립부터 라 회장과 함께한 1세대 경영진이다. 그룹 내 라 회장의 복심을 가장 잘 읽는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라 회장을 지원하는데 그를 능가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행장은 물론 지주사 사장으로 일찌감치 예견됐던 이유다. 라 회장은 신한의 뼈대를 이루는 재일교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삼아 지금의 신한을 일궜다. 신 사장 역시 재일교포들과 돈독한 신뢰관계를 쌓아왔고, 이는 신 사장의 지주사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동고동락하며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두 사람 관계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자연스레 책임 문제가 대두된다. 이 행장이 이런 일을 독자적으로 감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만일 그랬다면 라 회장의 그룹 장악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전에 보고받았다 해도 뒷말은 남는다. 신한은행 내부에서조차 "내부적으로 조용히 봉합할 수 있는 문제를 외부에 노출시켜 갈등을 일으키는 건 조정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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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한 임원 역시 "라 회장과 신 사장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무성해 내부가 뒤숭숭하다는 것은 직감했지만 현직 임원을 고발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정말 뜻밖의 일이다. 당분간 사태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KB금융 사태를 겪으며 가뜩이나 금융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 않은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것 신 사장만이 아니다. 라 회장은 자초지종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2005년 최영휘 전 지주 사장을 경질한 데 이어 재차 후계자를 쳐냈다는 시선을 받게 됐다.
신 사장이 낙마하면 후임으론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서진원 신한생명 사장 등 50~ 60대 초반 경영인들이 꼽히고 있다.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최방길 신한 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등도 차세대군이다. 모두 1세대 경영진에 이은 2세대 리더들이다. 외부 인사 중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차기 경영구도가 이백순 행장에 집중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