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진 백제의 혼, 1400년만에 다시 깨우다

머니투데이 공주(충남)=최병일 기자 2010.08.2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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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중심지 '충남 공주·부여']

편집자주 역사는 대개 승자의 편이다.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주변 국가(일본)에까지 문화의 진수를 전파한 백제는 한동안 우리 역사에서 소외돼 있었다. 남아 있는 유적도 거의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절터나 돌탑 정도니 화려했던 백제문화를 이야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나긴 세월을 지나 최근 백제가 부활하고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대백제의 진수가 꽃이 되어 피어나고 있다.


- 흔적만 남은 백제문화 고증으로 재현
- 낙화암 등 전설깃든 자연경관도 볼만


백제로 떠나는 첫번째 여행은 충남 공주 공산성에서 시작됐다. 백제 문수왕 시절 흙으로 쌓은 토성인 공산성은 이후 조선시대에 돌성으로 바뀌었다. 공산성은 인절미의 유래가 깃든 성이다. 공산성에서는 신라와 백제의 전투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인조대왕이 피란왔다가 임씨란 사람이 내놓은 떡을 맛본 뒤 절미(뛰어난 맛)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임절미가 인절미가 됐다는 이야기. 공산성에서는 멀리 금강이 내려다보이고 뜨거운 태양이 토해내는 열기만큼 단단했던 백제 사람들의 옹골진 마음이 성 곳곳에 배어 있다. 송산리 고분군은 많지 않은 백제시대 왕가의 무덤이다.



▲왕릉가는길 ▲왕릉가는길


유일하게 피장자가 밝혀진 무열왕릉은 도굴범들에 의해 부장품이 거의 사라져버려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백제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유적이다.

왕릉에서 발견된 금제귀걸이나 청동거울 하나만 살펴보아도 백제문화의 높은 수준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사실 백제문화는 많은 부분 역사책에만 존재한다. 백제시대에 왕궁이 어떠했는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많지 않은 기록과 상상력이 보태져야만 한다.



▲사비궁의 모습 ▲사비궁의 모습
오는 9월에 개장하는 백제문화재현단지는 후대 사람들이 백제인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사실 외형으로만 보면 백제문화재현단지는 여타 민속문화단지보다 단출하다.

백제문화재현단지는 화려한 볼거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중요 무형문화재인 대목장과 단청장, 각자장, 번와장, 칠장 등 5개 분야 장인이 모여 백제의 모습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백제문화는 거의 남아있는 것이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백제문화를 재현하는 데는 백제가 기술을 전수한 일본의 건축물을 참고했다고 한다. 단지 안에는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사비궁과 능사, 백제 건국 초기의 궁성인 위례성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여기에 16개 관등으로 돼 있는 백제시대의 생활문화마을, 고분공원까지 꾸며져 1400여년 전 화려했던 대백제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백제문화단지는 단순히 재현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아주 섬세한 면부터 역사적 고증을 위해 애를 썼다. 사비궁의 궁성 지붕에 올려진 장식물인 치미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것을 참조했다. 단청 또한 현저하게 명도를 낮췄다. 화암사의 단청이 채도와 명도를 낮춰 그려졌으니 아마도 왕궁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다.

▲정림사지5층석탑▲정림사지5층석탑
능사는 백제문화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있다는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곳이다. 능사 중앙에 5층 목탑은 38m 크기에 번쩍이는 첨탑이 세워져 있다. 개장 후에는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당장 내년부터는 롯데월드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백제의 모습을 재현할 예정이다. 백제의 모습이 담긴 건축물 중 정림사지만한 것이 없다. 마치 돌을 가래떡 빚듯이 깎고 다듬어 석탑을 만든 솜씨는 그야말로 예술혼의 절정을 보여준다. 비문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쓴 글도 있다.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또하나의 유적은 낙화암과 궁남지다. 그 사이로 처연하게 흐르는 백마강이 있다. 구드래 나루터에서 전통 목선의 모습을 한 배를 타고 가다보면 낙화암이 보인다. 낙화암은 무수히 많은 전설이 숨어 있는 곳이다.

▲궁남지 연꽃▲궁남지 연꽃
백제 멸망기 꽃처럼 뛰어내린 3000 궁녀의 이야기는 대표적인 전설이다. 하지만 정말 그러했을까. 생각보다 낙화암과 강물 사이의 거리는 그리 높지 않다. 승자가 만들어낸 역사는 늘 그러하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그렇게 음탕하고 무기력한 왕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의자왕은 무려 160여개에 달하는 지역을 정벌해 통치한 위대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이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현하려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 이른바 수상쇼다.

이제 여행의 끝이다. 서동요의 주인공인 무왕과 선화공주가 사랑을 나눈 궁남지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지천에 피어 있는 연꽃은 소담스럽기만하다. 색깔도 다양하다. 백련과 홍련이 사태졌다. 우리나라 최초 인공정원인 이곳에서 무왕은 어떤 사랑을 했을까.

그 아름답던 백제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다시 올 백제는 또 어떤 모습일까. 연꽃의 청순함으로 되살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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