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요즘 관계가 꼭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자 대학 동문으로 친분이 남다른 금융권의 두 실세가 한판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를 앞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전략 대결이다.
◇李회장 "우리금융 지분 분산매각 하자", 매각객체 부담=이 회장은 우리금융을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금융 경영권과 간판, 구성원, 고객 모두를 흔들지 않는 민영화 달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분 분산 매각이 최선의 민영화 방안이라고 판단하는 건 이 때문이다. 여러 주주들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 지분(57%)을 나눠 매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금융은 경영권 변동 없이 '독자경영'에 나설 수 있다. 합병 방식과 달리 직원들을 내보내는 구조조정이 불필요하다. 고객들이 느끼는 혼란이나 불편함도 최소화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지분 분산매각은 주주 구성만 잘 되면 조기 민영화는 물론 공적자금 회수금액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승유 "합병으로 리딩뱅크", 자금력이 변수= 이 회장 못지않게 김 회장도 더없이 절박한 심정이다. 4대 금융지주회사 중 하나금융은 덩치 면에서 크게 밀리는 4위다. 김 회장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 없이는 하나금융이 더 발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리금융과의 '합병'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하나금융이 우리금융과 합쳐지면 자산 규모 530조원 규모의 '리딩뱅크'로 떠오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김 회장은 일찍부터 그룹 전략기획팀을 통해 우리금융 민영화에 대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것은 정부 지분 중 절반 가량을 현금으로 매입한 후 주식맞교환을 통해 '합병'하는 방식이다. 하나금융이 과거 서울은행을 인수할 때와 유사한 딜(deal)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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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는 우리금융과 합병하는 데 필요한 자금력. 하나금융이 정부 지분의 절반을 현금으로 매입하기 위해선 3조~4조원 가량이 필요하다. 내부 조달 가능 자금이 2조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1조~2조원의 자금을 외부에서 수혈해야 한다. 하나금융은 재무적투자자(FI)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김 회장의 더 큰 고민은 다른 데 있다. 이 대통령과 대학 동기동창이란 관계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부담'이다. 금융권에선 이 때문에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의 '합병'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분 분산 매각이든, 합병이든 우리금융 민영화 목표를 현실적으로 모두 충족하긴 어려워 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면서도 "사실상 두 가지 대안으로 좁혀진 만큼 이 회장과 김 회장의 수 싸움이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