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분의 1도 안되는 가격 매각…손실액 15조엔
- 회원권값 1990년 4388만엔→2010년 189만엔
- '골프=고급운동=접대문화' 등식 깨진지 오래
#일본 도쿄의 A부동산투자회사 사장은 도쿄도 인근에만 우리돈으로 20억∼30억원을 주면 살 수 있는 골프장 매물이 4∼5건 나와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골프회원권이 아니고 골프장 전체를 인수하는 가격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회원권값이 아닌 골프장 매매가격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도쿄에서 자영업을 하는 재일교포 박준기씨(가명·56)는 골프회원권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골프매니아인 그는 1988년 2000만엔 넘는 고가의 회원권을 샀다가 큰 손해를 봤다. 박씨의 회원권값은 1990년대 초 4000만엔까지 뛰었지만 이내 급락세로 돌아서더니 2004년엔 150만엔까지 떨어졌다.
인터넷 예약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평일 반값 할인, 각종 쿠폰 발급, 단체고객 유치 등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눈물겨운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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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주말에 골프 한번 치려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하는 한국과 전혀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한국의 골프장수와 연간 골프장 이용객수 등을 살펴보면 포화상태에 달한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앞으로 국내 골프산업 추이에 귀추가 주목된다.
◇줄도산 일단락됐지만 경영난 여전…신규개장 골프장 전무
2000년대초 일본에선 골프장의 도산이 이어졌다. 부동산값과 더불어 골프회원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1990년대 초 건립된 골프장의 회원권 예탁금 반환 시기(10년)가 도래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리던 골프장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회원권값이 분양가보다 떨어지면서 예탁금을 돌려달라는 회원들의 잇단 요구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경기불황으로 이용객이 줄어도 예탁금과 연회비, 비싼 이용료로 버텨온 골프장들은 줄줄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에선 정부가 접대비에 고비율의 세금을 매기면서 접대골프는 자취를 감췄다.
자연스럽게 회원권을 구매하는 법인 수요도 줄었다. 회원권은 당연히 휴지조각이 됐다. 일본 관동골프회원권거래소협동조합에 따르면 1990년 2월 4388만엔이던 골프회원권 평균가격은 2003년 6월 249만엔으로 폭락했다. 올 4월 현재 평균가격은 189만엔이다.
일본의 총 골프장수는 2009년말 현재 2442개다. 이는 2006년 이후 줄곧 같은 수치로 최근 4~5년간 일본에서 신규 개장한 골프장은 전무하다. 경기가 안좋아 이용객이 급격히 줄어든데다 골프회원권 분양이 안돼 수익을 내기 어려워서다. 골프장 건설 인허가를 받고 수년째 착공을 못하거나 아예 사업을 중단한 곳도 많다.
일본 도쿄 인근의 B골프장 총지배인은 "골프산업이 활황이었을 때는 땅값이 싼 외곽에 경쟁적으로 골프장을 지었지만 지금은 대도시에서 차로 1시간30분 이상 걸리는 곳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골프장 '부익부빈익빈' 심화…"골프는 고급 아닌 대중스포츠"
장기 불황에 따른 일본 골프업계의 최대 변화는 골프장의 양극화다. 제한된 골프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부분 골프장은 저가전략으로 돌아섰지만 일부 골프장은 여전히 고가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골프 회원권값도 마찬가지다. 수도권 외곽의 골프장 회원권 중에는 500만∼1000만엔에서 10만∼20만엔으로 떨어진 경우가 허다하지만 인기 톱 30위권 골프장의 회원권 시세는 여전히 평균 1000만엔 이상을 유지한다.
도쿄권에서 가장 비싼 고가네이 골프장 회원권 가격은 현재 6000만∼8000만엔선이다. 이 회원권은 거품 붕괴 전 4억5000만엔을 호가했다. '골프=고급운동=접대문화' 등의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일본은 회원제 골프장에서도 캐디 없이 스스로 승용카트나 수동카트를 끌고다니는 셀프플레이가 정착돼 있다. 회원권시장이 무너지면서 연간회원제, 인터넷 예약 등도 자리잡았다.
저가 골프를 원하는 고객들이 늘면서 평일 반값 할인 요금제를 실시하는 골프장도 적지 않다. 라운드할 때마다 쿠폰을 발행해 맥주나 식사, 추가 라운드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