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銀 전 지점장 680억 횡령, 어떻게?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2010.08.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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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2년 동안 들키지 않고 680억여원을 빼냈는지…"

지난 3월 고발된 외환은행 선수촌WM센터 전 지점장 정모(47)씨가 빼돌린 금액이 경찰 조사결과 683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 수법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9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08년 초 지점장으로 부임한 뒤부터 올해 초까지 2년에 걸쳐 VIP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다른 회사에 빌려줬다.



경찰과 외환은행측은 정씨가 2008년 프라이빗뱅킹(PB) 고객 예금 수백억 원을 펀드와 MMF 등에 투자했다가 금융위기가 닥치며 손실을 보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시 금융위기로 전 세계 증시가 폭락하는 과정에서 일부 펀드 등은 절반 이상의 손실을 봤다"며 "아마 실적을 높이기 위해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줄 수 있다고 불완전 판매(금융상품의 기본구조, 원금손실 가능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판매)했다가 코너에 몰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씨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주요 VIP 고객 3~4명(15개 계좌)의 통장과 인감을 갖고 거짓으로 입출금 전표를 만들어서 돈을 빼냈다. 고객 모르게 통장에서 돈을 빼낸 것. VIP고객 대부분이 통장과 도장 등을 맡겨놓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정씨는 이렇게 빼낸 돈을 자신의 친인척 명의로 다른 회사 4곳에 대출해줬다. 당초 상장사로 알려졌지만 4곳 모두 비상장사였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두 자리의 높은 대출이자를 받아 손실을 메우려고 했으나 막상 돈을 빌려준 기업들이 이를 갚지 않으면서 물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기업들과 친분을 갖게 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중 약 184억원이 변제된 상황이다.

정씨가 인출한 액수가 큰 만큼 경찰은 1~2차례가 아닌 수차례에 걸쳐 거짓 입출금 전표 작성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현재 금융기관은 '혐의거래 보고' 제도에 따라 1000만원 이상의 거래에 대해 관련 증빙 서류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토록 돼 있다. 따라서 정씨가 약 2년에 걸쳐 수 차례 거액을 인출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점은 의아하다는 지적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상시감사 등을 통해 내부 감시를 하고 있음에도 해당 지점장이 시스템을 잘 알고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통장에서 돈이 인출된 고객이 평소 거액 거래를 해온 자산가라면 크게 주의를 끌지 못했을 것이란 게 업계의 추측이다.



이에 따라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에도 한 시중은행의 PB 담당 직원이 14억여 원의 고객 정기예금을 인출한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일이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과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는 PB업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기 쉽다"며 "지점장의 경우 정상적 업무절차 생략도 가능해 이런 행위에 대한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준법감시제도(영업점컴플라이언스제도)등으로 상호간 견제 장치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 형식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외환은행은 해당 지점장을 보직 해제하고 최종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씨는 자신이 고객에서 포괄적 위임(일임매매)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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