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와 김문수의 닮은꼴…새로운 '당선 공식'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10.07.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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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선거'…표심을 움직이는 현장성과 진정성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재오 서울 은평을 당선자는 모든 지원을 마다한 채 현장 중심의 '나홀로 선거'에 주력해 야권 통합후보인 장상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이재오 서울 은평을 당선자는 모든 지원을 마다한 채 현장 중심의 '나홀로 선거'에 주력해 야권 통합후보인 장상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한국 선거지형에 새로운 '당선 정석'이 등장했다. 바로 '나홀로 선거'다. 이재오 당선자(서울 은평을)가 그 주인공이다.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7·28 재보선에서 당초 예상을 깨고 야권 단일후보인 장상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58.2%의 득표율을 기록, 장상 후보(40.2%)를 무려 18%포인트나 앞섰다.



이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철저히 홀로 걸었다. 일찌감치 "나를 살리려면 한강을 건너지 말아달라"며 당 지도부의 지원사격을 일체 거절했다. '정권 2인자'라는 수식어를 스스로 버리고 '백의종군'했다. 야구모자에 티셔츠를 입고 자전거로 지역구를 누벼 '자전거 의원'이란 애칭을 얻었다. 목욕탕을 돌며 하루종일 지역구민들의 때를 밀기도 했다.

야권의 '정권심판론'은 그에게 매서운 칼날임에 틀림없었다. 그가 선택한 맞불전략은 '지역일꾼론'이었다. 야권이 그를 정권실세로 규정한 뒤 "심판해야 한다"고 몰아붙인 것은 어찌보면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식이 때로 구식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아챘다. 대대적인 야권 공세에 맞서 나홀로 선거로 맞서며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했다.

그의 전략은 주효했다. 실세가 몸을 낮추자 그 매무새가 더욱 돋보였다. 당선 직후 그는 "잠이 부족해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다 갈현1동에서 졸아 크게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되새겼다. 나이 65세인 정권실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이런 모습이 은평구민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당선자의 나홀로 선거는 현장에 대한 존경을 품고 있다.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전국 각지의 현장을 돌며 직접 어려운 사람들로부터 민원을 듣고 해결하는 과정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는 관측이다. '현장 속으로 몸을 던지는' 전략이 정치인생 최대의 난국을 헤쳐갈 묘수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이미 나홀로 선거의 효과를 톡톡히 입증했다. 김 지사가 선택한 전략은 '24박25일 봉사'였다. 청소년 쉼터, 어린이집, 공장근로자 기숙사, 목욕탕 등을 찾아 함께 생활했다. 다른 후보들이 전시효과를 위해 하루 중 달랑 몇 시간만 할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온종일 몸을 던졌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6·2지방선거에서 '24박25일 봉사'를 펼치며 경기도 현장 곳곳을 누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6·2지방선거에서 '24박25일 봉사'를 펼치며 경기도 현장 곳곳을 누볐다.
김 지사는 현장형 지도자로 일한다. 지난 4년 동안 관용차로 지구 6바퀴에 해당하는 23만km를 달렸다. 1년 동안 주말을 이용해 하루 12시간 이상 택시를 직접 몰며 현장을 누볐다. 나 홀로 선거의 '일상생활판'이다.

김 지사는 재임 성공 후 전국 16개 시·도 광역단체장 가운데 가장 검소한 취임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후보들의 취임식 비용이 2000만~4000만 원을 기록한 데 비해 김 지사는 달랑 330여만 원을 쓰는 데 그쳤다.



여권의 두 거물이 보여준 나 홀로 선거, 현장 중심주의는 '진정성'과 일맥상통한다. "하늘의 때(天時)는 땅의 이득(地利)만 못하고, 땅의 이득은 사람의 화합(人和)만 못하다"(맹자 공손추 하편 왕도론)라는 교훈의 현대적 적용이다. 민주당은 정권심판 요구라는 천시에 기댔지만, 몸을 낮춰 마음을 파고든 이재오 당선자의 인화 전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코 위의 뿔만을 응시하며 홀로 우직하고 곧게 움직이는 무소…. 두 정치 지도자의 평범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행보는 한국 선거판에 신선한 자극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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