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밥퍼' 봉사 10년.."나눔이 제 행복 비결이죠"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2010.07.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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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당당한 부자; 소셜홀릭]"무료급식 봉사는 내 운명" 강신우 화란조경 사장

편집자주 육체적으로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사서 고생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생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남을 도우면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강신우 화란조경 사장도 이런 사람이다.

#정장을 입은 중년 남성이 어느 날 대구지하철역 앞에 있는 '무료 밥집'을 찾았다. 이 밥집은 생계가 어려워 밥을 굶는 노숙자나 독거노인 등을 위한 무료 봉사 단체.

단벌로 입고 온 정장은 이후 이곳을 찾을 때마나 조금씩 해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장은 없어지고 추리닝으로 바뀌었다. 어느 새 정장을 입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노숙자 모습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는 다시 말끔한 차림으로 쌀 한가마니를 가지고 무료 밥집을 찾았다. 그동안 끼니를 얻어먹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답례였다.

↑강신우 화란조경 사장, (사진=이동훈 기자)↑강신우 화란조경 사장, (사진=이동훈 기자)


강신우 화란조경 사장(57)은 매주 월요일마다 200~300명의 노숙자와 독거노인 등을 위해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 데 최소 원재료비만도 100만원이 넘게 든다. 경제적인 지원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혼자서 그 비용을 다 감당한다. 지금은 자원자도 많이 생겼지만 처음 시작할 때엔 장보기부터 식사준비, 재료비용까지 거의 그의 몫이었다.



밥을 준비하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가장 큰 밥솥(30인용) 3개를 샀다. 이것으로 3번 연속 밥을 지어야 노숙자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할 수가 있다. 어느 더운 여름날엔 거대한 솥에다 오뎅 볶음을 만드는데 양파 특유의 톡 쏘는 냄새와 솥에서 나오는 열기로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된 적도 있다.

한 끼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시작해 꼬박 하루가 걸린다. 한겨울에는 국을 끓여 가져오면 곧바로 식어버려 다시 가스버너를 이용해 새로 국을 데우는 이중의 수고를 해야 한다.

그 외에도 일일이 말할 수 없는 육체적인 수고가 뒤따른다. 하지만 그는 이런 봉사활동을 10년째 단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왔다. 심지어는 하고 있는 조경 사업이 매우 어려워져 금전적인 난관에 처해있을 때조차 그는 이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혹자는 '이렇게 밥을 공짜로 주니깐 노숙자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하지'라고 속 모르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노쇠해져서 사회적응이 쉽지 않기에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래도 위의 경우처럼 간혹 정장차림의 멀쩡한 사내가 와서 밥을 먹는 경우도 있다. 사업이 부도나거나 실직 등의 이유로 일시적으로 거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얼마간 무료 밥집을 통해 도움을 받고 난 후 이후에 이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을 보는 게 그에겐 가장 뿌듯하고 살맛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노숙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다.

"밥퍼 봉사는 나의 숙명..나누면 행복해져요"

어떤 사람들은 왜 구태여 이렇게 힘든 봉사활동을 매주 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성직자도 아니고 일반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이 굳이 이런 봉사를 하게 된 동기가 있는지 말이다.

그에겐 특별한 사연이 하나 있긴 하다. 불교 신자인 그는 10년 전 인도에 한 달간 성지순례를 간 적이 있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의 한 보리수나무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곤 한국으로 돌아와 대구의 한 절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절을 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쳐다봤는데 어쩐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잠을 잤는데 관세음보살의 슬픈 눈동자가 꿈속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혼자 '이게 무슨 뜻일까'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절의 주지스님에게 뜻밖의 주문을 받았다. '대구지하철역으로 한 번 나와 봐라'는 것이었다.

스님의 말을 따라 대구지하철역에 나왔다. 허름한 옷차림에 쇠약한 얼굴을 한 노숙자들이 밥한 끼를 먹기 위해 줄로 서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숙명적으로 깨달았다.

당시 그는 잘나가는 조경업체 사장이었다. 대학 졸업 후 농업교사 일을 하다가 접고 시작한 조경일이 어느새 전국 도급 순위 17위를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사세가 번창했다.

'부자'로 살아온 그였지만, 이 일을 계기로 '자신만 배불리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이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 새 10년이라는 세월로 쌓였다. 그는 노숙자들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다.

"나눔은 수평적인 관계일 때만 진정으로 가능해"

노숙자들은 그가 편해보여서인지 가끔씩 투정을 부린다. '반찬이 오늘따라 맛이 없다'는 식이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무조건 아무 밥이나 먹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노숙자들도 묵은 밥을 준다던지 반찬이 맛없게 됐다든지 하면 평소보다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늘 햅쌀밥에 정성껏 반찬을 만들어서 식사를 대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투정부리는 노숙자들에게 "미안하다. 다음엔 더 맛있는 밥을 해 주겠다"고 사과하고 다독거린다. 쇠고기 등을 사다가 한 끼 고깃국을 해주면 평소보다 훨씬 잘 먹는다고. 그렇게 맛있게 한 끼 식사를 먹는 것을 보면 행복하다고 털어놓는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당신들에게 밥을 지어줬으니 맛없더라도 맛있게 먹어라'는 식으로 대할 거였다면 굳이 이런 봉사를 할 필요가 없죠. 아무리 자신이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나눔의 관계는 절대 수직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껴안아 주어야지요."
노숙자 '밥퍼' 봉사 10년.."나눔이 제 행복 비결이죠"
처음엔 스님과 강 사장 둘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200~300명의 식사를 대접하는 육체적 수고도 크지만, 재료비만도 만만치 않은 까닭에 가끔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기적처럼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진다고. 그런 사람들의 정성들로 인해 '밥퍼' 봉사는 10년째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곳간도 비워야만 채워지지요. 혼자만 잘 살려고 곳간 채우기에만 급급해서는 안됩니다. 더불어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진정 '당당한 부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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