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고교에서 2학년 학생 60여 명이 13일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했지만 학교장이 이를 은폐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이 학생들의 담임교사인 전교조 소속 이모 교사는 ‘시험 거부자는 기타결석(합당한 결석) 처리하라’고 한 서울시교육청의 공문을 근거로 학생들을 설득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친전교조 성향의 곽노현 교육감이 시험 전날 ‘학업성취도평가를 안 봐도 무단결석은 아니다’고 한 공문을 학교에 보냈다가, 시험 전날 밤과 시험 당일 아침에 이를 번복하는 공문을 잇따라 보내면서 생긴 혼선이 영등포고에서 불거진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14일 이 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전교조 교사 담임반을 포함한 학생 60여 명이 시험을 거부했으나 미응시자가 0명이라고 허위 보고한 서울 영등포고의 모습.
1교시에 박 교사의 담임반 32명을 비롯해 36명이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이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1교시가 끝나자 ‘시험을 안 봐도 괜찮더라’는 얘기가 학교에 퍼졌다. 2학년 박모(18)군은 “‘시험 안 보겠다’고 한 애들을 선생님이 말리지 않고 ‘기타결석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퍼져 시험 거부한 애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2교시에는 이 교사가 담임인 학급 15명 등 59명이, 3교시에는 50명이 시험을 거부했다. 중복 인원을 제외하면 총 60여 명이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교과부·교육청 공문 전쟁 벌이더니=이번 사건은 교과부와 교육청의 공문 전쟁이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곽 교육감이 시험 전날 오후에서야 ‘거부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는데, 밤 사이에 이와 상반된 교과부 공문을 다시 보내면서 혼란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교과부와 교육청은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파악조차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영등포고에선 시험 거부자가 60여 명이나 속출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시험 첫날 등교 후 미응시자를 18명으로 교과부에 보고했다. 이날 교과부는 “나중에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시·도 교육청의 보고를 토대로 하면 현재까지 지침을 위반한 교원은 없다”고 발표했었다. 보고 체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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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수련·김민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