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담합? 현대그룹 제재조치 논란

더벨 문병선 기자 2010.07.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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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전문가들 "특정기업 '공동' 제재결의 위법요소 있어"

더벨|이 기사는 07월08일(16:26)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8일 현대그룹에 신규 신용공여 중단 조치를 취한 13개 은행의 행위가 법적으로 정당한 가에 대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정 기업에 대한 금융제재를 '공동'으로 결의한 행위에 '담합'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 및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라는 자율협약 사항이 금융제재 조치까지 취할 수 있는 구속력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첫째다. 두번째는 은행 공동으로 대출을 못하도록 결의하는 행위가 '부당한 거래 거절 행위'가 아니냐는 점이다.

앞서 현대그룹은 7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외환은행과 기타 채권은행들이 함께 대출 회수 및 신규 여신 취급 중단 조치를 결의하는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1항 1호의 불공정한 집단거래거절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현대그룹 역시 채권단의 제재를 예상하고 관련 법률 검토를 끝마친 것으로 해석돼 향후에는 공정위 제소 및 행정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대그룹에 대한 채권단의 제재가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소지가 있다는 데는 다수의 변호사가 동의하고 있다. 대형 로펌 한 변호사는 "은행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가 없어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관례적으로 채권단의 방침을 수용했다"며 "채권단이 공동으로 특정 제재를 취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했기 때문에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문제이고 공정거래법상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워크아웃법)' 정도가 채권단의 공동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합법적 수단이다.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재무평가와 후속 조치인 재무구조개선약정 조치는 뒷받침할만한 법률이 없다. 있다면 은행업 감독 규정뿐이다. 여기에서도 채권단 공동 행위를 명문화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역시 재입법 과정에서 시장 자율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채권단의 공동 행위에 대해 문제가 지적돼 왔었다. 기촉법 역시 올해 10월을 끝으로 일몰되는 법률이다.

국내 대형 로펌 다른 변호사는 "은행업 감독 규정은 은행법의 하위 규정이므로 상위 법률과 하위 규정간 저촉 여부가 없는지를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특정 기업의 재무가 안 좋다고 해서 공동으로 제재하는 규정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그룹도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서는 신규여신 중단 등의 제재조치를 취할 경우 주체를 주채권은행에 국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으로 제재를 결의한 행위는 가장 큰 논란거리다.

만일 외환은행 (0원 %)이 독자적으로 현대그룹에 신규 신용 공여를 중단했다면 이는 합법적이고 은행 고유의 권한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외환은행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타 채권은행이 독자적으로 이를 뒤따르는 것도 논란의 소지는 있으나 문제가 없다. 하지만 외환은행은 각 채권은행에 비공개적으로 공문을 발송하고 이를 다시 취합해 서면결의했다.



은행간 경쟁을 저해하는 '공동 담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그룹에 대한 금융 제재는 13개 은행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국내외 일반 채권자 및 다수의 주주의 권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제재 조치는 13개 은행, 특히 4개 은행이 주도했다. 전체 채권자의 권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를 여신을 제공한 일부 채권은행이 진행한 것이다.

허창복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신규 자금을 지원 안하겠다는 것은 자율적인 결정인데 그것을 공동으로 했다는 게 문제"라며 "개별적으로 하면 문제가 안되지만 공동으로 하면 공정거래법의 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공정거래위원회는 7개 액화석유가스(LPG) 공급회사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심의에서 "피심인들이 매월 LPG 판매 가격을 합의함으로써 국내 LPG 판매 시장에서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며 "총 6698억원의 과징금을 국고에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또 "피심인들이 충전소 등 다른 거래처에 판매하는 LPG의 가격 결정 계획이나 결정 내용에 관한 정보를 상호 교환하거나 제공해서는 안된다"고도 주문에 기술했다.



이에 비춰볼 때 현대그룹에 대한 13개 채권은행의 공동 제재 조치도 공동으로 가격 결정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국내 기업 구조조정 역사상 은행의 조치에 반발하는 사례도 없었지만 반발하는 기업에 금융 제재 조치를 취한 사례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 이전까지는 채권단의 행위는 '전지전능한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관례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채권단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방식이 이번 기회에 위법적 요소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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