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외환은행'..피로감 몰려온다

더벨 문병선 기자 2010.07.0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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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의 거듭된 재무약정 체결거부에 제재 수단 딱히 없어

더벨|이 기사는 07월06일(14:56)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손을 놓고 싶을 것이다. 현대그룹이 이렇게 강하게 거부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현대그룹 채권단 관계자의 말이다. 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0원 %)은 3번에 걸쳐 현대그룹에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을 요구했으나 번번이 거부당했다. 강력히 반발한 현대그룹은 깜짝 실적까지 발표해 "재무구조가 허약하다"는 외환은행의 논리까지 무색하게 하고 있다.

팽팽한 갈등이 이어지면서 난감해지고 있는 것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주채권은행과 채권단의 권위가 서지 않을 정도"의 지경이다. 피로감마저 느껴진다.



외환은행이 난감한 처지에 빠진 이유는 누구보다 '원만한 해결'을 원하지만 현대그룹을 설득할 묘안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현대그룹이 원하는 것은 주채권은행 교체와 재무구조 재평가로 요약된다. 외환은행이 이 요구를 들어주려면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뒤엎어야 한다. 재평가를 허용해주는 것은 기존의 재무평가가 잘못된 것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재무 평가를 다시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요구"라면서도 "최악의 상황은 모든 은행이 피하고 싶어 해 난감하다"는 말로 분위기를 대신했다.

주채권은행의 권위가 서려면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조정을 지휘해야 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채찍'이 있어야 소위 말하는 '권능'이 선다. 그래야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주되 여신 관리를 통한 기업의 감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외환은행은 마땅한 제재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은행업 감독업무 규정에는 주채권은행은 기업의 경영을 지도하고 재무구조개선을 유도하되 만일 기업이 은행의 방침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감독원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기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는 일종의 채찍을 주채권은행에 쥐어 준 규정이다.

그러나 주채권은행이 갖고 있는 '여신 회수'라는 채찍은 현대그룹의 채무상환 방침에 칼날이 무뎌지고 있다. 현대그룹은 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외환은행에게 대출금 400억원을 상환했으며 나머지 대출금도 조속한 시일 내에 상환 완료해 외환은행과의 거래관계를 소멸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은 채무 금액은 1200억원대로 예상되고 현대상선은 현재 1조원대의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스스로 여신을 갚겠다고 나서는 기업에게 여신 회수라는 채찍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신 회수를 제외한 다른 제재 수단은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외환은행의 난감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군의 지원사격이 시간이 갈수록 더디다는 점이다. 부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농협, 신한은행의 반응은 예전만 같지 않다. 현대그룹의 반발 초기만 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발끈했다. 주채권은행 교체 여부에 대해서도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요즘엔 "외환은행의 동의만 있으면.."이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조심스러운 반응에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지난달 말 외환은행은 현대그룹 문제를 4개 은행(외환은행, 산업은행, 신한은행, 농협)으로 구성된 재무구조평가위원회에서 13개은행으로 구성된 채권은행협의회로 이관했다. 물론 운영위원회는 4개은행이 맡아 주된 의사결정을 할 것이다.



현대그룹은 올해 2분기(4~6월)에 현대상선이 깜짝 실적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현대상선 (17,630원 ▲320 +1.85%)은 지난 2분기 1조9885억원의 매출과 1536억여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의 경우 1분기(1~3월)보다 13.3%, 전년 동기(2009년 4~6월) 대비 38.8% 늘었다. 영업이익은 전분기보다 무려 1224% 증가했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흑자전환했다.

이는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는 외환은행의 논리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깜짝 실적이 올해 말까지 이어진다면"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외환은행으로서는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대그룹과 40여년 동고동락해 온 외환은행은 누구보다 원만한 해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주채권은행의 자리를 다른 은행에 내 줄 지, 사태가 파국으로 치달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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