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개방했던 외환정책 패러다임 전환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2010.06.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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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선물환포지션 한도 규제 배경과 의미

정부가 13일 자본유출입에 따른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은 것은 무엇보다 1997년과 2008년에 겪은 두 차례의 금융위기가 급격한 자본 유출입에서 초래됐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7년 11월부터 1998년 3월 사이에 220억 달러가 유출돼 외화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2008년 10월에서 2009년 3월에도 국내 은행과 외국은행 국내지점에서 각각 271억 달러, 285억 달러가 빠져 나가 환율급등을 비롯한 부작용이 야기됐다.



정부는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호황기에는 자본이 과도하게 들어오고 불황기에는 급격히 유출돼 실물경제보다 더 큰 폭으로 금융외환시장이 출렁이고 실물경제가 영향을 받는 악순환을 끊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껴왔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자본유출입 변동성의 핵심에 은행을 통한 단기차입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를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선물환 포지션 한도 신설 등을 통해 외은 지점들의 단기 차입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



2006년과 2007년 조선사, 자산운용사 등이 실수요를 넘는 선물환 매도를 통해 환헤지를 하면서 당시 총외채 증가(1953억 달러)의 절반 정도가 국내은행과 외은지점의 선물환 매입에서 비롯됐다고 정부는 추정했다.

이로 인한 단기외채 부담은 한국 경제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반면 급격한 자본유출을 주도한 외은지점은 2008년 순이익이 2조2000억 원에 달했으며 선물환 등 파생상품 관련 이익은 23조5000억 원의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차관은 “일부 기업이나 은행의 선물환 거래로 발생한 과도한 단기외채가 국가신인도를 저하시키고, 외환보유액 확충과 운용 부담 증가, 자본유출입에 따른 환율 변동성 증가 등 막대한 부담을 일으켰으며, 이를 정부와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떠안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책은 1993년 금융자율화와 시장개방 계획을 시작으로 한 일련의 '외환 자유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의미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 경제 수준 이상으로 많이 개방했던 것을 바로 잡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본자유화와 시장개방의 기본 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까지 거둬들이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주식과 채권 등 자본시장의 대외개방이라는 기조는 유지하되 과도한 자본유입을 억제해 불황기의 자금이탈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같은 대책을 과감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을 중심으로 ‘급격한 자본유출입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된 것도 한몫했다.

이달 초 부산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회의에서 자본변동성과 위기전염 방지를 위해 국내, 지역, 다자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 역시 정부의 부담을 덜어 줬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해외 차입이 자유화돼 자본유출입의 제한이 거의 없어졌던 상황에서 이 같은 논의가 확산됐고 정부 역시 이 같은 흐름에 자연스레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미 국가별로 자국 경제상황에 맞는 규제를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것 역시 정부의 정책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일명 볼커 룰이라 불리는 대형금융기관의 자기매매, 헤지펀드 투자금지방안을 마련했다. 유럽연합(EU)도 헤지편드 규제강화방안을 지난달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영국은 외은 지점에 대한 유동성 규제를 지난해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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