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건설사와 '보이지 않는 손'

더벨 길진홍 기자 2010.06.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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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최근 위기 중소건설사 잇단 '수혈'… "부도 막는 외압, 공공연한 비밀"

더벨|이 기사는 06월08일(08:2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기업의 구조조정 진행 과정에서 '좀비기업'이란 말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좀비기업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정부 또는 채권단 지원으로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있는 기업들을 일컫는다. 자체 생존능력을 상실해 정상 기업활동이 불가능한 기업, 숨이 붙어 있지만 죽어 있는 기업이 바로 좀비기업이다.



독자적인 생존능력을 잃은 좀비기업은 태생적으로 채권단 안팎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정치적인 논리로 생사가 갈리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인 셈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채권은행들의 움직임을 보면 건설업 구조조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감독당국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지만 은행들은 한계기업에 돈을 퍼붓고 있다. 단순히 대손충당 적립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석연치가 않다. 지원 대상이 연 매출 3000억원 미만의 중소형 건설사로, 금융권 익스포저가 작은 반면 추가 부실 위험이 큰 업체들이기 때문이다.

국민은행과 농협은 지난 4일 최종부도에 직면한 성지건설에 90억원을 지원했다. 이는 성지건설이 앞으로 두 달 간 버틸 수 있는 자금이다. 오는 9월 안양 인덕원의 아파트형 공장 입주에 차질이 빚어지면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

성지건설 (671원 ▲116 +20.9%)은 여의도 파크센터 상가와 김포 아파트형공장에 묶인 930억원 규모의 공사 미수금도 단기간 내 회수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자보상비율도 -6.33(2009년 말 기준)배로 급속히 악화돼 있다. 그동안 빚을 내 금융비용을 감당했다는 얘기다.


감독당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창 건설업 구조조정의 칼날을 세우고 있던 때에 성지건설의 부도 모면이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은 은행이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에 돈을 대준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건설사들을 과감히 정리 하는 게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 방향"이라며 "(성지건설에 대해) 자금지원을 안 하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전문건설업체인 진성토건도 지난달 채권단으로부터 100억원을 수혈 받았다. 이 업체는 보름 만에 보유현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200억원을 추가 지원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달에만 100억원 어치의 어음이 만기 도래한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인 셈이다.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결정은 전적으로 리스크를 분담하는 은행의 몫이다. 그러나 은행의 자의적 판단을 흐리는 외부 압력이 차단되지 않는다면 좀비 건설사가 대거 양산될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미 최근 건설사 부도를 막은 지역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채권은행 한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에 (정치권)외압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런 분위기라면 힘(배경)있는 건설사가 살고, 힘없는 건설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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