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이 신사옥에 흡연공간을 마련한 이유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김태은 기자 2010.06.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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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스마트 연구회 3차 회의]스마트한 공간 관리 방안 놓고 열띤 토론

분당 정자동의 명물로 떠오른 NHN의 신사옥. 27층 높이에 연면적 10만1000평방미터(약 3만평) 규모로 지은 최첨단 건물이다. 건축비만 1400억 원이 투입됐다.

이 건물 4층에는 대형 흡연 공간이 있다. 건물 한 층의 절반 정도를 할애해 천장을 없애고, 그 곳에서 휴식과 흡연이 가능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흡연 공간을 줄여가는 추세인 것과 비교하면 뜻밖인 셈이다.



NHN이 이런 흡연 공간을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흡연실이 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 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직원들간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NHN 분당 신사옥 전경. 이 건물 4층에는 대형 흡연 공간이 마련돼 있다. ↑NHN 분당 신사옥 전경. 이 건물 4층에는 대형 흡연 공간이 마련돼 있다.


머니투데이와 삼성경제연구소가 출범한 워크스마트 연구회가 이번에는 스마트한 '공간 관리'를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지난 24일 열린 3차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조직 관리나 업무 방식 못지않게 업무 특성에 맞게 일하는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배치하는냐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업무 집중도를 높이면서도 소통을 원활히 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끌어낼 수 있는 공간 배치 등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포스코 (399,000원 ▼3,500 -0.87%), 자리 배치만 바꿨을 뿐인데..= 흔히들 워크스마트 하면 업무 방식이나 조직, 시간 관리 등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간 관리다. 일하는 공간의 배치나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의 따라 일의 능률과 조직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포스코는 지난 2007년 공간 배치를 통해 팀장과 팀원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었다. 이전에는 팀장이 앞에 앉고, 직원들을 바라보는 형태로 자리가 배치됐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이 팀장을 굉장히 어려워했다. 구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문서로 만들어 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자리 배치를 ' 벤젠형'으로 바꾸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벤젠형 자리 배치는 팀장과 팀원들이 가운데 원 탁을 두고 등을 맞대고 앉는 구조다. 평소엔 자기 업무를 하다가 등만 돌리면 언제든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처음에는 불편함도 적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팀원들이 팀장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김윤정 포스코 글로벌HR실 대리는 "'팀장님' 하고 부르면 바로 돌아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소통 측면에서는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경영진의 사무실 배치를 바꿔 혁신을 일으킨 A기업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어느날 자신을 포함한 임원들의 개인 사무실 사용을 모두 금지했다. 그리고 자신과 20명 가량의 임원이 모두 한 사무실 내 대형 테이블에 같이 앉아 업무를 보게 했다. 20개의 사무실은 직원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고 20명에 이르던 비서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무엇보다 회의소집 등 임원들 간의 소통에 들어가던 비용이 크게 줄었다.

공간 배치는 생산성과 직원들의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동경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 교수는 "한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의 데스탑을 모두 노트북으로 바꿨는데 딱 8개월만에 3분 1 이상이 어깨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며 "불편한 공간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

◇수도사들도 외롭다? = '조직 내 부서간 장벽'을 허물고 시너지를 내는 일은 많은 기업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런 소통에도 공간 배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한 예로 개인 공간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 수도원 같은 곳에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교수는 "수도원에는 각기 수도사의 방 이상으로 중요한 공간으로 '클로이스터'라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이 있었다"며 "이곳을 통해 성직자들간의 교류가 이뤄져 원활한 수도 생활이 가능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소통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 사무공간들의 근접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건물 들을 배치할 때 지상이든 지하든 다양한 통로를 마련해 접근이 용이하게 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업무 집중도를 유지하면서도 소통을 활성화한 공간 배치 사례도 소개됐다. 이 교수는 "독일 뮌헨 공과대학의 기계학부는 별표 모양을 길게 늘어뜨린 형태로 사무실을 배치하고 그 가운데를 함께 이용하는 복사실, 커피마시는 곳, 회의장으로 구성했다"며 "교차하는 지점에서 서로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간의 진화..창의적 사고 끌어내라= 최근 공간 배치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업무 몰입도와 소통에 대한 고려를 넘어 창의적인 사고를 끌어내는데도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 교수는 "대부분 뜻밖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지식 창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휴렛팩커드(HP)의 예를 들었다. HP는 당초 직원 복지를 위해 층마다 휴게실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게실에서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의견에 따라 휴게실을 없애 버렸다. 그러나 휴게실을 없애면 업무 성과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매출은 점점 더 감소했다.

이 교수는 "원인은 결국 부서간 벽이 높아진 때문으로 파악됐다"며 "옆 부서에서 하는 일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의 한 채용 지원업체인 링크&모티베이션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 촉진을 위해 혁신적인 공간 배치를 해 성공한 사례다. 이 회사는 사무실은 배, 회의실은 선실로 설계하기도 하고, 계란형 테이블이 놓인 콜럼버스라는 회의실, 마릴린먼로실, 다빈치실, 아이슈타인실 등 다양한 컨셉트의 사무실로 직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 회사는 단기간에 업계 2위로 올라서는 성과를 냈을 뿐 아니라 공간 배치 컨설팅을 자체 사업화하는데도 성공했다.

↑지난 24일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머니투데이-삼성경제연구소 워크스마트 연구회' 3차 모임에서 이동경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 교수가 '공간과 혁신'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24일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머니투데이-삼성경제연구소 워크스마트 연구회' 3차 모임에서 이동경 한국산업안전관리공단 교수가 '공간과 혁신'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각 기업들이 처한 환경과 개개인의 주어진 역할이 틀린 만큼 직무에 맞는 공간 배치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어떤 공간 배치이든 장단점이 있을 수 있고 만병통치약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스마트폰 보급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 모바일 오피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장점도 있지만 고려해야 할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혁진 삼성화재 인사파트 과장은 "외환위기 직후 현장직원들에게 모바일 오피스 개념을 일찌감치 적용했던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며 "사무실이 일종의 둥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병하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유연 근무제의 경우에도 일과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회사로 부터 시간 통제 받을 때보다 더 무리를 해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결국 이전 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더 희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박문수 포스코 정보기획실 팀리더는 "업무의 특성에 맞는 사무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소통과 이동성이 중요한 마케팅 홍보 업무는 모바일 업무를 확대할 필요가 있고, 전략 기획 업무는 몰입과 협업이 용이한 구조로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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