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은행시장의 경쟁과 지배구조

머니투데이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 2010.06.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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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은행시장의 경쟁과 지배구조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은행 수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합해 26개에 달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수의 은행이 과도한 경쟁을 벌인 결과 당시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의에 근거한다.

은행의 기능은 차입자를 선별하고 감시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하지만 은행시장이 극히 경쟁적일 경우 이들 비용을 대출금리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 은행의 대응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선별과 감시에 투입되는 노력과 비용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이처럼 선별과 감시가 약화된 상태에서, 가격경쟁으로 줄어든 예대마진을 만회하기 위한 자산확대 경쟁까지 더해진다. 당연히 무자격 차입자들에게 대거 자금이 흘러가고, 그 결과 은행권의 잠재적 부실이 지속적으로 쌓여가는 것이다.

1997년의 은행위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은행시장이 어느 정도 집중된 상태에서만 은행의 선별 및 감시기능이 회복되고, 이는 다시 자원배분 효율성 제고로 이어져 국가경제의 견실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후 수차례에 걸친 은행간 합병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은행 수는 13개로 대폭 줄었다. 은행 수 감소에 따른 과잉경쟁 해소는 은행의 수익성과 건전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와중에도 국내 은행산업이 충격을 덜 받은 데는 과잉경쟁 해소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일반산업과 달리 은행산업에서는 완전 경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 토를 달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 집중이 언제까지 계속되어도 괜찮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상위 5개 은행의 시장점유비는 83.5%로, 1997년 말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 사실상 5개 은행이 시장을 거의 다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이처럼 소수 몇몇 은행의 시장지배력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오버뱅킹 해소 차원을 넘어 독과점 폐해를 우려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장집중도 상승이 높은 수수료 등에 따른 금융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은행시장의 과도한 집중은 지배구조에도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흔히 지배구조라 하면 경영자를 규율하는 기업 내부의 메커니즘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주로 이사회를 비롯한 내부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내부 지배구조 개선 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실제로 보다 선진적인 내부 지배구조를 갖춘 금융기관이 이번 금융위기 때 오히려 더 나쁜 성과를 보였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결국 금융기관 경영에 대한 효과적인 규율을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는 물론 외부 지배구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외부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는 바로 시장경쟁이다. 시장경쟁이 지나치게 미약할 경우에는 기업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더라도 퇴출될 위험이 없다. 그러다보니 경영진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거나 자신만의 제국을 구축하는데 기업의 소중한 자원을 소진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시장경쟁의 부재는 강성노조의 전횡을 낳기도 한다. 독과점 상태에 있는 국내 자동차산업이나 극단적 독점기업인 공기업 노조들의 행태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은 이미 충분히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대형은행에 대한 기대감 또한 여전한 듯하다. 그러나 대형은행간 추가 합병은 국내 은행시장의 경쟁 약화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은행산업에 대한 규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 소유 금융그룹 매각을 앞두고 초대형은행 탄생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에도 주의를 기울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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