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장에 기대지 말라"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0.05.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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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우리 동네 일자리 만들기]시장형 사회적기업의 생존 노하우

↑대구의 사회적기업 화진테크화진택시에서 청각장애인직원들이 장갑을 만들고 있다. 이 업체는 대구 장갑시장으로 뛰어들면서 남보다 5원 더 받겠다는 각오로 품질을 높이고 가격은 유지해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경숙 기자↑대구의 사회적기업 화진테크화진택시에서 청각장애인직원들이 장갑을 만들고 있다. 이 업체는 대구 장갑시장으로 뛰어들면서 남보다 5원 더 받겠다는 각오로 품질을 높이고 가격은 유지해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이경숙 기자


"우리 업체와 사회적기업이 뭐가 다릅니까? 우리도 직원들한테 4대 보험 보장해주고 월급을 법정 최저임금 이상 주는데요. 우리도 사회적 기업 인증 받을까요?"

서울 종로구의 한 영세업체 사장의 말이다. 이 업체 직원은 7명. 장애인은 없지만 모두 가계소득이 도시가계 평균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취약계층이다.



그의 말처럼 겉으로 보기에 사회적기업은 영세기업과 비슷해 보인다.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의 2008년 평균 임금은 106만8000원. 근로자 중 평균 60%가 장기 실직자, 여성 가장, 장애인, 고령자 등 취약계층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회적 기업이 취약계층을 고용하면 1인당 93만2000원(40시간 기준)을 3년간 지원한다. 또 전략기획, 회계, 마케팅 등 전문 인력 을 고용하면 1인당 150만 원 한도도 인건비를 분담해준다.



공공기관 우선구매도 적용 받는다. 정부, 지자체, 공사 등 공공기관들이 사회적 기업이 생산하는 생산품이나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도록 장려해 '보호된 시장'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다.

'사회적 기업이 되면 혹시 대기업의 사회공헌자금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도 생길 수 있다. 사회적 기업에 기부하는 기업 즉 연계기업은 그 기부금을 법인소득의 5% 범위 내에서 손금 산입으로 처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증 후 4년간 법인세 감면, 사업주 부담 4대 사회보험료 일부 지원, 부지 구입비ㆍ시설비 융자, 경영컨설팅 지원 등 다른 혜택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이 된다고 이런 혜택을 모두 받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전체 사회적일자리 및 예비사회적기업 지원예산을 줄이고, 인증 사회적기업 예산은 늘렸다. 사회적가치와 함께 생존가능성을 인정받아야 지원해주겠다는 뜻이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더라도 사회적일자리 예산 즉 취약계층 인건비 지원이 보장되진 않는다. 지난해 일부 사회적기업은 2년으로 계획된 사회적일자리 직원을 1년만에 탈락시키거나 지원신청 인원을 크게 줄였다. 노동부가 2010년 사회적일자리 사업 지원예산을 1487억 원으로 2009년 대비 21.1% 줄인 여파였다.



사회공헌 예산을 따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실시한 사회적 기업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의 경쟁률은 4대 1. 16곳의 사회적기업과 예비사회적 기업이 서류심사를 통과해 그중 4곳이 융자를 받았다. 3000만 원을 연 2%에 융자받는 조건이었다.

또한, 기업 기부금의 손금 산입은 사회적 기업 중 비영리기관에 기부해야만 인정해준다.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고 기부단체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기업 전문가들은 "정부의 인증을 받더라도 공공기관, 사회공헌자금에 지나친 기대는 걸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업체가 287곳에 이르면서 예산을 따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정부는 앞으로 사회적 기업 1000곳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으로 700곳 이상의 기관이 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는 사회적 기업의 시장 생존력을 키우는 데에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은애 노동부 사회적기업과 전문위원은 "미국의 NISH(보호작업관련기관)가 공공시장을 통해 중증장애인 일자리의 절반 가까이 창출하는 비결은 시장의 수요를 예측해 좋은 인력을 양성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 이러한 시스템이 없는 한국에선 공공시장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 한 공적금융기관 구매 담당자는 "사회적 기업 제품을 사려고 해도 살 게 없다"며 "필요 없는 물품을 구매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사회적기업 화진테크화진택시의 서기석 전무는 "공공시장을 보지 말라"라고까지 말한다. 공공기관도 예산의 제한을 받고 수요에 따라 구매하기 때문이다.

서 전무는 "사회적기업도 어디까지나 기업"이라며 "지역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뚫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업체는 대구 지역시장에서 22억 원 이상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덤핑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고용장려금, 사회적일자리 지원금으로 비용이 낮아진다고 시장에 낮은 가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면 지역시장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인증은 약육강식의 시장 속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다. '사회를 배려하는 경제'라는 새로운 시장체제로 들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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