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장 잘달리는' 사회적 기업 아세요?"

머니투데이 대구=이경숙 기자 2010.05.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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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우리 동네 일자리 만들기]대구 사회적기업 화진테크화진택시

↑대구의 사회적기업 (주)화진테크화진택시에서  이 회사의 서기석 전무(좌)가  회사로 인사 온 퇴직자 오창수(우)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화진에서 4년 간 일했던 오씨는 2008년 개인택시를 양수해 운행하고 있다.ⓒ이경숙 기자↑대구의 사회적기업 (주)화진테크화진택시에서 이 회사의 서기석 전무(좌)가 회사로 인사 온 퇴직자 오창수(우)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화진에서 4년 간 일했던 오씨는 2008년 개인택시를 양수해 운행하고 있다.ⓒ이경숙 기자


대구시 각산동 ㈜화진테크화진택시 세차장 앞. 오월 햇살 속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색 'K7' 택시 옆에서 두 남자가 환담을 나눈다.

푸르도록 흰 와이셔츠에 잘 다려진 검은 색 정장 바지를 입은 남자는 목발을 짚고 섰다. 잘 빗겨 넘긴 반백의 머리와 미소가 중후하다.



다른 남자는 면바지를 밑이 걸리지 않게 양말 속으로 넣어 입고 안전화를 신었다. 검게 그을린 팔뚝과 바지엔 페인트가 튀었다. 어느 쪽이 이 회사 경영진일까.

정장의 중년신사는 이 회사의 전 직원인 개인택시운전사 오창수(47)씨, 일꾼 복장의 남자는 창업자의 아들인 서기석(40) 전무다.



오 씨는 4년 동안 화진택시를 몰다가 2008년 개인택시로 독립했다. 1992년 트레일러 운전 중 오른쪽 다리를 잃은 그는 화진택시 입사 전엔 가내수공업으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면서 근근이 살았다.

"부품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고 나니 할 게 있어야죠. 장애인을 써주질 않으니. 화진에 들어와 다시 운전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개인택시도 꿈꾸게 된 것 아닙니까. 전엔 몰랐어요. 장애인이 개인택시 몰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 꿈도 못 꿨지요."

오 씨는 "대구에선 화진에 들어가면 개인택시 한 대 해나간다는 말이 있다"고 전했다. 근무조건이 다른 회사보다 좋고 경영진과 직원 관계가 좋단다. 화진테크화진택시는 2008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장애인 고용으로 회사 경쟁력 높여=전 직원은 95명. 그중 65명이 장애인이다. 지체장애인 35명은 운전기사로 일한다. 나머지 30명은 장애 유형에 따라 차량정비, 사무기기와 프로그램 관리 업무를 한다. 지적장애인과 청각언어장애인은 장갑을 만들고 차를 닦는 식이다.

이 회사는 2003년 장애인고용촉진대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22억5천여만 원의 매출을 냈다. 장갑제조기계, 매장에 재투자하느라 주주 배당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장애인부모회, 달구벌복지관, 농아인협회 등 대구 복지법인에 사무용품과 서비스를 기증했다.



원래 설립 목적이 사회적 가치 추구나 장애인 고용은 아니었다. 창업자인 서정배 대표는 기독교방송에서 근무하다가 언론통폐합 때 고향으로 와 1981년 화진택시를 설립했다. 사업은 잘됐다.

변화의 시점은 1998년에 왔다. 외환위기 직후 쏟아져 나와 택시를 몰던 명예퇴직자들이 저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경기회복과 함께 유가도 급등했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고질적인 운전기사 부족과 비용 상승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경영진은 '장애인 고용'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 지금은 장애인 고용장려금이 장애정도와 성별에 따라 월 30만~50만 원으로 줄었지만 당시만 해도 월 100여만 원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서 전무는 "비장애인 운전사가 LPG 1000리터를 쓸 때 장애인 운전사는 1300리터를 쓴다"며 "우리는 장애로 인해 떨어지는 생산성을 장려금으로 상쇄하는 대신, 보조기구를 잘 갖추고 좋은 자질의 운전자를 뽑아 전체 생산성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 회사 교통사고지수는 0.87로 대구택시회사 99곳 중 저사고율 30% 안에 든다. 사망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 그 덕에 이 회사는 대구의 다른 택시회사보다 자동차 보험료를 월 평균 1000여만 원 적게 낸다. 서 전무는 "고용장려금 덕분에 좋은 기사를 구해 사고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라 사고를 낼까요? 사람이라 사고 냅니다. 운전습관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전방추돌 사고를 내는 운전자는 운전자 자질이 없는 겁니다. 좋은 운전자가 되는 데에 장애, 비장애는 중요하지 않아요."



2년 전 퇴사한 오 씨가 아직도 편하게 회사로 마실 오고 비장애인 퇴사자들과 함께 모임을 꾸려나가고 있는 배경엔 이런 기업 문화가 있었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 '자질'을 중시하는 문화.
↑화진테크화진택시에서 한 장애인직원이 사무기기를 수기하고 있다. 이 기업은 장애유형별로 잘할 수 있는 업무를 개발해 맡긴다. ⓒ화진테크화진택시↑화진테크화진택시에서 한 장애인직원이 사무기기를 수기하고 있다. 이 기업은 장애유형별로 잘할 수 있는 업무를 개발해 맡긴다. ⓒ화진테크화진택시
◇경영진의 그을린 팔뚝이 성공비결= 화진테크화진택시는 국내 사회적 기업 287곳 중 매출 기준으로 6위다. 대구경북 지역의 사회적 기업 20곳 중에선 매출 34억 원의 종이컵 제조업체 제일산업에 이어 2위다.

화진테크화진택시 매출에는 규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같은 공공시장에 기대지 않고 매출을 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주력상품인 법인택시, 장갑, 사무기기임대 모두 시장 속에서 품질을 인정받아 우위를 확보했다. 서 전무는 "대구 장갑시장으로 뛰어들면서 남보다 5원 더 받겠다는 각오로 품질을 높이고 가격은 유지했다"고 말했다.



류병윤 대구경북 사회적기업 지역센터장은 사회적 기업이 일반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을 '서 전무의 그을린 팔뚝'에서 찾는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업이란 게 좀 번다고 번듯하게 책상 놓고 앉아서 될 일이 아닙니다. 시장으로, 현장으로 뛰어다녀야 합니다. 사회적기업도 사내문화와 경영진의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벤처기업, 일반기업과 마찬가지죠."

우리 동네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라도 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다른 장수기업들과 비슷했다. 시기에 맞는 경영판단, 경영진의 리더십, 화합을 만드는 기업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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