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면 비를 맞아라-1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2010.05.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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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삶은 받아들임과 선택 속에 있다

왜 사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억지로 답을 찾지 말자. 어둠에 갇힌 내 안을 아무리 들여다 보았자 길이 보일 리 없다. 차라리 나보다 더 갑갑한 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자. 그곳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자.

최근 이런 몇 분이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나는 이 분들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들은 삶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깊은 울림으로 가르쳐준 스승들이다.



먼저, 하반신이 마비된 체조 선수. 그는 18살 생일을 이틀 앞둔 1983년 7월4일, 체조 연습을 하다 잘못 떨어져 가슴 아래가 마비되는 중증 장애인이 된다. 올림픽에 걸었던 그의 꿈은 무너진다. 그는 병원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석달을 누워 지낸다. 깊은 어둠 속을 헤매기를 1년, 마침내 그는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이 뚫린다. 마음 깊은 곳에서 기도가 우러나온다.

그는 이제 다른 꿈을 향해 일어선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재활의학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거기에서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사고가 난지 딱 10년만에 다트머스 의대에 합격한다. 그 대학과 하버드 의대 인턴을 수석 졸업한 후 세계 최고라는 존스흡킨스대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전문의가 된다. 이 대학의 '슈퍼맨 의사'로 통하는 그는 한국인 이승복이다.

그는 말한다.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내 희망을 꺾지는 못했다. 나에게 육신의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할 수 없다'는 마음의 장애가 더 무섭다. 나는 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나는 의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사고 전과 지금의 삶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지금을 선택할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장애를 축복이라고 여긴다." <이승복·김세진·이상묵 외 지음, 나는 멋지고 아름답다>

두번째, 두 팔을 절단한 전기 기사. 그는 29살이던 1984년 어느 가을날, 전기 안전점검을 하다 고압 전기에 감전된다. 갑자기 두 팔이 전선에 척 들어붙으며 몸 안으로 불덩이가 들어온다. 나중에 눈을 떠 보니 양 손이 없다. 까맣게 타버린 두 팔은 이미 잘려 나갔다. 이제 그는 걷는 것 말고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옷도 다른 사람이 입혀 주어야 하고, 밥도 먹여 줘야 한다. 세수도, 용변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 그가 절망의 끝에서 찾은 길은 그림이다. 그는 평생 미술 시간 외에는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날 4살 된 둘째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보챈다. 그는 의수에 볼펜을 끼고 동화책에 나온 새를 그려 준다. 그런데 아들이 그 그림을 너무 좋아한다.

사고를 당하고 4년 동안 아무 희망 없이 살던 그는 여기서 자기 길을 본다. 미술 학원을 찾아다니다가 받아 주는 곳이 없으니 서예학원을 찾아 간다. 여기서 어느 정도 배우고는 또 다른 스승을 찾아간다. 수묵 크로키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그는 한국 제1호 의수 화가, 석창우다.

누군가 그에게 묻는다. "하늘에서 건강한 두 팔을 다시 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답한다. "안 받아요. 내가 양팔을 잃은 것이 운명이라면 의수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숙명입니다." <같은 책>

이 두 분의 인생 반전은 닮은꼴이다. 그들은 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중증 장애를 받아 들인다. 그리고 더 큰 삶을 찾는다. 그럼으로써 장애는 절망을 넘어 운명이 되고, 축복이 된다. 장애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불시에 찾아든 장애를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여부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삶의 의미란 이런 받아들임과 선택 속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말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라고. 그리고 또 말한다. 사지가 마비되고 잘려 나가는 장애도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거늘, 어째서 그토록 사소하고 작은 고통에 굴하느냐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으라고.

  ☞웰빙노트

세상에 슬픔과 고통을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슬픔과 고통은 우리의 인생을 진지하고 맑게 해준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온전히 겪어본 사람은 고통을 피하려다 고통을 겪는 사람과 달리 자비롭고 너그럽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슬픔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너그러움을 깨닫게 된다.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

시련의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다시금 새로운 꽃을 피우듯이 사람도 모든 고통을 극복한 후에는 언제나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되는 법인데, 그 꽃은 물론 마음 안에서 피는 것이므로 먼 곳까지 향기가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꽃은 반드시 인생이라는 거름을 그 자양분으로 한다. <이외수, 사랑 두 글자만 쓰다가 다 닳은 연필>

현재 당신 모습과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당신의 수준을 반영합니다. 당신은 엉뚱하게도 자신이 지금과 같이 된 것이 인생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당신, 즉 인식 수준이 삶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어떤 사건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는 점을 깨닫기 전에는 진정으로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가이 핀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 놓아 버려라>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리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 <오쇼, 장자 도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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