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쟁 가장 현실적인 답은 중재"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0.05.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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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태평양 김갑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김갑유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 ⓒ임성균 기자↑법무법인 태평양 김갑유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 ⓒ임성균 기자


기업의 국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기업 간 분쟁을 해결하는 주요 수단으로 '중재'가 급부상하고 있다. 중재는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 대신 분쟁 당사자가 사인(私人)인 중재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마음에 드는 중재인을 직접 선택할 수 있고 절차도 유연해 당사자가 분쟁 해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특히 국적이 다른 기업들 간의 분쟁을 중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때문에 중재는 국제 사회에서 소송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갑유(48·사진) 변호사는 인류가 생각해낸 국제분쟁 해결의 가장 현대적인 모델이 중재라고 말한다. 현대의 법률 시장이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는 추세에 비춰 볼 때 소송 당사자가 분쟁 해결의 장소와 주체, 진행 방식까지 정할 수 있는 중재야말로 가장 소비자 지향적인 모델이라는 설명이다.

"소송은 법이 정해놓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됩니다. 하지만 중재는 분쟁 당사자가 해결 절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사전에 자유롭게 합의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중재 진행 중에도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중재 절차에 이 아이디어가 금세 반영되고 현장에서 곧 실행되죠."



분쟁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결국 합리적인 해결 방안인데, 소송을 거치게 되면 법이 정한 절차에 구속될 수밖에 없다는 게 김 변호사의 견해다. 중재는 3심제인 재판과 달리 판정이 한 번에 확정된다. 시간과 비용이 모두 절약되는 셈이다.

"국제분쟁 가장 현실적인 답은 중재"
◇"법조인, 우리 기업 경쟁력 갖도록 도와야"= 김 변호사는 생소했던 국제중재 업무를 국내에 뿌리내리게 한 선구자이자 세계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은 변호사다. 영국의 로펌 전문 평가회사인 '체임버스 앤드 파트너스'(Chambers & Partners)의 전 세계 변호사 개인별 평가에서 국내 변호사로는 유일하게 '스타'(Star Individual) 등급을 받았다.

그는 세계 3대 국제중재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 중재법원(ICC Court)과 런던국제중재재판소(LCIA), 미국중재인협회(AAA)의 상임위원으로 모두 선임된 세계 최초이자 최연소 변호사다. 특히 지난해 국제중재 분야에서 UN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A)의 35명 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된 데 이어 최근에는 사무총장으로 내정됐다.


국제중재 분야 최고의 영예인 ICCA 사무총장 임명장을 받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출국을 앞둔 김 변호사지만 국제중재 업무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를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굶어 죽는다"며 말렸다.

김 변호사의 첫 국제중재 사건은 1998년 우리 제약회사와 미국 의료기회사의 대리점 계약 해지에 따른 재고 반환 문제를 둘러싸고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사건이었다.

그는 우리 제약회사를 대리해 미국 최대로펌인 베이커 앤 맥킨지(Baker & Mckenzie) 소속 변호사와의 싸움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당시 그는 국제무대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분쟁해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곧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회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조인은 도대체 무엇을 기여하고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결국 전문성을 키우고 해외에 함께 나가 국제 경쟁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국제중재 팀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소속 로펌은 2년 동안 말렸지만, '못 먹고 살아도 괜찮으니 한국 기업에 분쟁해결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며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세계 국제중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태평양 국제중재 팀이다. 2002년 변호사 3명으로 출범했지만 현재 외국 변호사 4명을 포함해 총 15명으로 구성된 아시아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김 변호사는 국내의 경쟁 로펌들에도 국제중재 업무를 확대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한국을 아시아 중재시장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을 아시아 중재시장 메카로
"아시아 지역에서 분쟁을 겪고 있는 전 세계 기업들이 중재의 장소로 한국을 선택하도록 이끌고 싶습니다. 중재지는 안전하고 이동이 편할 뿐 아니라 법률제도도 정비돼 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국제중재를 위한 최적의 장소입니다."

"국제분쟁 가장 현실적인 답은 중재"
김 변호사는 서울이나 인천 송도를 국제중재의 도시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제중재의 거점도시가 되면 이곳으로 입국하는 분쟁 당사자들의 체류비가 수입으로 이어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우리나라도 싱가포르처럼 중재를 국가적 차원에서 홍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선진 법률제도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김 변호사는 "국제 법률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대륙법과 영미법이 충돌하는 부분에서 접점을 찾고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대륙법 근간에서 로스쿨과 배심원제 등 영미법 제도를 실험하고 있는 한국의 법률제도를 전 세계에 자연스레 알리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중재 택했다면 서류관리 철저해야"
"미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분쟁의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중재를 택해야 합니다. 미국의 소송은 너무 비싸고 괴로운 절차여서 가급적 피하는 게 유리합니다. 영국도 비용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법률 집행력이 떨어지는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는 현지 법원의 절차에 애로가 많을 수 있기 때문에 중재를 택하는 게 좋습니다."

소송과 중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기업을 위한 팁이다.

중재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에는 판정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서류와 이메일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중재 절차 가운데는 '디스커버리'라고 불리는 증거개시 절차가 있는데, 문제가 될 만한 서류를 숨기려 했다가는 오히려 불리한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디스커버리 대상에서 제외되는 서류가 무엇인지, 공개를 원치 않는 서류를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 김 변호사는 "우리 기업은 서류를 함부로 보관하거나 민감한 내용이 담긴 서류를 꽁꽁 숨기다가 나중에 큰 코를 다치는 경우가 있다"며 "변호사로부터 법률 자문을 받은 문서는 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디스커버리 원칙도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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