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금호가(家),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0.05.14 11:04
글자크기

고 이순정 여사 영정 앞에서 박삼구-찬구 회장 손 맞잡고 대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명예회장(오른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회장이 지난 12일부터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모친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다. ⓒ이동훈 기자↑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명예회장(오른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회장이 지난 12일부터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모친의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다. ⓒ이동훈 기자


14일 오전 9시경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금호아시아나 (9,770원 ▲280 +2.95%)그룹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 부인 고 이순정 여사의 영정을 지켜보던 금호그룹 사람들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약 30여 분간 고인에게 음식을 바치는 상식이 올려진 직후 박삼구 그룹 명예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고인의 영정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장례 절차가 시작된 지 3일만이다.



지난해 7월 이른바 '형제의 난' 이후로 이들 형제가 공개된 자리에서 두 손을 마주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대화의 내용보다는 마주 잡은 두 손에 모든 이들의 눈길이 쏠렸다. 박삼구 명예회장이 박찬구 회장의 손을 쓰다듬고 이어 두 회장은 짧은 귓속말을 나눴다. 두 회장의 표정도 그 순간만큼은 밝아보였다.

모친인 이 여사가 지난 12일 별세하자 상주 자격으로 두 회장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재계 인사 등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이틀 동안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소 냉랭한 분위기 속에 서로 잘 마주보지도 않았다. 경영권 분쟁의 후유증이 저 멀리서도 느껴졌다.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 이후 형 박삼구 명예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불명예 퇴진시켰다.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박찬구 회장은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 경영자로 복귀했다. 박삼구 명예회장은 금호타이어를 맡으면서 그룹이 사실상 2개로 쪼개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렇게 돌아오기 힘든 길로 갈라선 형제가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다시 손을 맞잡은 것이다. 금호그룹 안팎에서는 이번을 계기로 그룹의 재기를 위해 형제간의 극적인 화해가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바람'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주부터 상태가 안 좋아진 모친을 며칠 동안 같이 모시면서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자식들이 화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 자체가 자식들로선 두고두고 가슴을 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잠시 손을 잡고 대화를 했다고 해서 두 사람의 앙금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빈소에서 두 형제는 밤낮을 부대꼈다. 눈물도 함께 흘렸다.

대다수의 금호가 사람들은 여전히 두 회장이 서로 어려운 관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형제간에 우애를 항상 강조하셨던 어머니는 떠나는 마지막 순간, 형제들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갔다. 두 회장이 마주 잡은 두 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