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삼성 공포', 삼성이 풀었다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2010.05.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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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상장으로 외인 원화 대거매수 우려… 계열사들 이틀간 달러 묶어 상쇄

"삼성생명이 부채질한 것을 삼성 계열사들이 껐다"

서울 외환시장은 3일과 4일 이틀 동안 '삼성 천하'였다. 삼성생명의 공모주 청약에 참여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달러를 대거 내다 팔고 원화를 사들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삼성 계열사들이 잠재운 것.

이 기간 동안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삼성중공업 (10,630원 ▲130 +1.24%) 등 전통적으로 서울 외환시장의 큰손인 삼성 계열사들이 하루 평균 5억 달러씩 내놓던 네고물량 출회(수출기업들이 보유한 외화를 내다파는 것)를 중단했다.



실제로 환율변동폭도 미미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115.5원에 마감했다. 전일에 비해서는 3.1원 내렸지만 지난달 30일 1108.4원에 비해 7.1원 올랐다. 외환당국도 삼성생명 IPO(기업공개) 이벤트가 '쇼크' 없이 끝나면서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삼성생명 청약일인 3일과 4일 이틀 동안 환전수요가 집중될 경우 원달러 환율 하락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유로화 약세, 중국의 지급준비율 인상 등 대외 변수들이 악화돼도 달러 공급이 늘면서 환율이 떨어질 가능성에 대비했던 것.



대한생명 공모주 청약 때도 외국인 배정금액(3919억원)은 삼성생명의 1조9552억원(약 18억 달러)에 비하면 1/5 정도에 불과했지만 환율은 청약 직전인 3월 초 1152원에서 대금납입일인 3월 12일에 1128원으로 하락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삼성생명의 외국인 청약경쟁률이 5대1을 기록할 경우 환전자금 수요가 약 90억 달러로 서울 외환시장의 일평균 거래량과 맞먹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따라서 최근 환율이 급락해 실개입에 나섰던 당국으로선 삼성생명 IPO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삼성그룹도 지난달 29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모주 청약일인 3일, 4일에 전 계열사가 네고물량을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삼성생명은 2억2000만 달러를 대금납입일인 7일 이전에 사들이겠다고 한 것.


이를 통해 일시적으로 달러 공급을 줄여 외환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였다. 환율이 하락할 경우 전자, 중공업 등 수출 위주의 계열사들에 악재가 된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처럼 삼성그룹이 네고물량을 내놓지 않겠다고 한 것은 실수급뿐만 아니라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가져 왔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삼성그룹의 네고물량 출회 중단은 삼성생명 상장에 따른 수급을 보고 달러 매도에 올인했던 심리를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며 "IPO의 영향력이 예상보다 반감됐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 역시 삼성의 네고물량 출회 중단이 최근의 환율 하락 추세를 되돌리지는 못할지라도 일정 정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삼성생명 기업공개(IPO)로 인해 시장이 일거에 받을 충격을 삼성이 덜어줬다"며 "이틀 동안 외환시장의 중요한 변수는 삼성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한 외환당국자는 "수출 계열사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네고물량을 이틀간 내놓지 않아 삼성이 나중에 치러야 할 기회손실도 있을 수 있다"며 "삼성이 전체 시장의 수급상황을 고려해 움직인 것은 긍정적"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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