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산곡동 아파트 일조권 소송을 맡아 승소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같은 당 원희룡·남경필 의원과 함께 만든 소장파 모임 '미래연대' 대표를 지내며 일명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린 정치개혁 입법을 주도했다.
당 경선을 보름 남짓 앞둔 시점에 출마를 선언, 50여일 만에 역전 드라마를 이뤘다. 오 시장은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최초의 40대 민선시장이기도 하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환경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는데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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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저공해 자동차 도입, 배출오염물질 총량관리를 골자로 한 '수도권대기환경개선법'을 대표발의,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2001~2003년 연속으로 국정감사우수의원에 선정됐다.
재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제주도만큼 맑고 깨끗한 서울'을 목표로 △선진국 수준 대기질 개선 △전기차 등 친환경 그린카 보급 △공공기관 선도 탄소배출권거래 실시 등을 공약했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고,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본선에서도 승리하면 민선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서울시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