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해외투자자 움직인 '에쿼티 스토리'

더벨 박준식 기자 2010.04.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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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단 의견 통일해 해외 세일즈..'삼성생명=한국' 대표성 부각

더벨|이 기사는 04월29일(08:5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삼성생명 기업공개(IPO)를 위한 해외 세일즈에 15조원(8.1대 1)이라는 거액이 몰린 비결은 무엇일까. 다양한 분석 가운데 주목할 점은 발행사와 주관사단이 함께 '에쿼티 스토리'를 만들고 투자자들에게 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이번 상장 거래에는 골드만삭스와 BofA메릴린치, 모간스탠리 등 쟁쟁한 일류 투자은행(IB)들이 자문단을 이뤄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거래 진행과정에서 각 사의 의견이 다르거나 자존심 싸움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발행사로서 카리스마를 잃지 않았다. 연말연시에도 테스크 포스(TF) 멤버들의 출석을 체크해 기강을 잡고, 490억원의 수수료 중 상당액을 성과급제로 돌려 IB 사이의 경쟁을 유도했다. 자문단의 기선을 제압한 후 의견을 통일하는 전략을 펼친 셈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다 잡는 것과 별개로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과신하거나 듣기 좋은 자문만 편애할 경우 정작 세일즈에 돌입해서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실제 이런 우려는 대표 주관사로 선정된 골드만삭스의 사내 심의위원회(commitee)에서도 불거졌다. 골드만은 사내 담당자들에게 주식이 예상만큼 안 팔려 배정물량을 인수할 가능성과 거래 실패로 인한 레퓨테이션 리스크를 고민하게 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아시아 생명보험업 시장에서 그다지 큰 메리트가 아니라는 건 사실이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중국의 CPIC과 일본의 다이이치생명, 미국의 AIA생명 등이 상장을 예고한 상황이었다. 국내의 비교우위가 큰 이점이 아니었다.


골드만 등 자문단의 역할은 삼성생명이라는 회사가 구주를 팔아야 하는 셀링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됐다. 한국의 최대 보험사가 왜 지금 주식을 팔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투자자들의 수긍을 이끌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그 결과 자문단은 지난 연말부터 삼성생명의 내재가치를 평가하는 작업과 병행해 넉 달간 5가지 이상의 투자 근거를 마련했다.



예컨대 이 중 한 가지는 삼성생명의 국가적 대표성과 상징성에 모아졌다. 삼성에 대한 투자는 '한국을 사는 것'과 같다는 논거였다.

약점을 보완하는 작업도 펼쳐졌다. 최대 보험사이지만 시장 점유율이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투자자에게 성장성이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내재가치 이상의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었다.

자문단은 국내 생보업의 중국 등 해외진출 전략과 추가적인 상품 개발전략 등을 근거로 보이지 않는 성장 가능성을 내세웠다. 투자자들의 우려를 회사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그를 상쇄할 비전이 충분하다는 내용이다.



일단 스토리가 구성되자 일관된 메시지 전달에 역량이 집중됐다. 골드만 같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사내에서도 IB조직과 리서치 조직이 차이니즈 월을 두고 정보를 교류하지 않아 평소 서로 입장을 조율하기 어렵다.

하지만 삼성은 이 문제가 해외 세일즈에서 회사의 신뢰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각 사의 리서치 애널리스트가 해외에서 투자자를 먼저 만나면 자기 견해를 마치 회사의 전망인 것처럼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우선 자문사단 리서치 연구원들의 일정까지 철저히 조절하면서 세일즈 과정을 지휘했다. 각 자문사 애널리스트는 4주간이나 진행된 투자자 예상 질의응답 준비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냈다. 리서치가 아무리 독립적이라고 하더라도 세일즈 당시 발표할 중심 스토리는 회사 측과 같이 일관성을 가져야 했다.



자문단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상 투자자에 대한 필터링을 진행했다. 이어 애널리스트의 사전 접촉 정보를 근거로 투자자 미팅 방식을 일대일 방식과 그룹 방식으로 나눠 각기 다른 전략을 짰다.

로드쇼는 두 팀으로 나뉘어 이뤄졌다. 이수창 사장을 중심으로 한 A팀과 한종윤 부사장이 맡은 B팀이 시간적으로 여유를 갖고 투자자를 충분히 만났다. 대한생명이 1개팀으로 시간에 쫓기며 모객에 실패한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삼성의 완벽주의는 투자자 질의응답에서 증명됐다. 로드쇼를 준비한 이수창 사장 등 최고경영진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면 안된다는 전제 하에 예상 질의응답 수백장을 2주 간 하루 5시간씩 영어로 예행 연습했다는 게 관계자 설명이다.



그 결과 실제 로드쇼에선 수십 개 질문 중 예상 밖의 질문이 한 두개에 불과했다. 자문사는 현장에서 답하지 못한 질문의 경우 다음 로드쇼를 위해 떠나기 전까지 리얼 타임으로 답변을 보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철저한 준비에도 뜻밖의 걸림돌이 있었다. 유럽 로드쇼를 마치고 미국을 향하려 했던 A팀이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런던에서 발이 묶이게 된 것. 이수창 사장은 골드만의 런던 백오피스 조직이 준비한 버스와 유로스타로 영국을 탈출해 이틀 밤을 새고 미국 로드쇼에 참석했다.

보스턴에서 이 사장을 기다리던 피델리티 등 주요 투자자들은 이 사장이 화산폭발을 뚫고 현장에 나타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거래 관계자는 "현지 로드쇼 마다 투자자들이 경영진의 자신감과 진지한 노력을 높이 사는 피드백을 줬기 때문에 성공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며 "넉 달간 준비한 '에쿼티 스토리'가 장기 투자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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