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희생 장병 유가족이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하관식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이날 유족들은 고인의 영정과 유골함을 대할 때 마다 오열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고 시민들도 해군 2함대 사령부와 대전 현충원에 나와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영정에 헌화와 분향을 할 때는 영정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장면이 연출됐고 인원제한으로 사령부내 체육관에서 영결식을 지켜보던 나머지 유족들은 화면에 가족의 영정이 비칠 때마다 흐느꼈다.
1시간 10분가량 진행된 영결식을 마친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현은 운구용 리무진 2대에 나뉘어 2함대 사령부 곳곳을 둘러보고 안장식이 열리는 대전 현충원으로 향했다.
고인들의 유골함을 운구하는 차량이 지나갈 때 평택군항에 정박해 있던 독도함, 부천함, 청주함 등 10여척의 군함은 일제히 기적소리를 울려 예를 표했고 각함의 승조원들은 갑판에 나와 경례를 하는 '대함 경례'와 해군을 상징하는 풍성 3000여개로 고인들을 배웅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또 해군아파트 주민들은 조화(弔花)를 가는 길에 헌화했고 인근 원정초등학교 교사와 학생 270여명은 종이비행기와 풍선을 날려 2함대를 떠나는 46용사에게 조의를 표했다.
함대사를 떠나 오후 2시 15분경 대전 현충원에 도착한 고인들의 영정, 영현, 훈장은 희생 장병 가운데 최고 선임인 고(故) 이창기 준위를 시작으로 제단에 안치됐다. 오후 3시 개회사를 시작으로 안장식이 거행되고 가족들의 헌화 및 분향이 시작되자 지친 모습의 유족들은 다시 한 번 오열했다.
각자 고인의 유골함, 영정 등을 붙들고 통곡하는 가족, 어린 자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권하는 등 유족들은 비통한 심경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헌화를 한 고(故) 서대호 하사의 모친은 김춘성 해군참모총장의 분향이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에도 영정 앞을 떠나지 못해 행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조총을 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안장식이 끝나자 고인들의 영현은 하관식이 엄수되는 합동묘역으로 이동했다. 이 때 최원일 함장(중령) 등 천안함 생존 장병 46명은 각자 고인의 영정을 품에 안고 가족들과 함께 이동해 전우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故) 이창기 준위를 시작으로 합동묘역에서 하관식이 거행되자 곳곳에서 통곡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족의 이름이 적혀있는 묘비를 붙들고 오열하는 가족, 바닥에 주저앉은 가족 등 곳곳에서 차가운 땅에 가족을 묻어야하는 슬픔에 목 놓아 우는 장면이 연출됐다. 일부 유족들은 오열하다 탈진해 해군 관계자와 다른 가족의 등에 업혀 이동했다.
고(故) 문규석 원사의 모친은 "흙도 세게 누르지 마라. 얼마나 아프겠나"면서 "바다에 수십일 동안 있었는데 이 좁은 곳에 또 갇혔다"고 통곡, 주위를 숙연케 만들었다.
또 지난 2002년 6월 고(故) 박경수 상사와 함께 제2연평해전에 참전한 이해영 원사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런 일을 겪었다. (고인은) 진정한 서해의 영웅"이라며 박 상사를 추도했다.
이어 이 원사는 "평소 마른 체구였던 박 상사를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며 "부디 좋은 곳에 가서 살도 찌고 편히 쉬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고(故) 나현민 일병의 아버지 나재봉씨는 "서울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문할 지 몰랐다"며 "국민들의 관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고(故) 이창기 준위의 영정을 운구한 최원일 천안함 함장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아무 말 없이 행사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고인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비통함을 짐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