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선진화를 부르짖는 국내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글로벌화의 핵심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 능력이다. 위기 이후 국내 은행권에서 바람직한 리스크 지배구조 정착과 리스크전담임원(CRO, Chief Risk management Officer)의 권한 및 역할 강화가 '화두'로 떠오른 건 당연한 일이다.
대다수 은행의 리스크위원회는 실질적 독립성이 거의 확보되지 못 하고 있었다. 심지어 CRO가 리스크 업무 외에 다른 일을 겸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은행들 대부분은 CRO가 중요한 리스크 이슈를 최고경영자(CEO)나 이사회에 보고하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렇다면 국내은행의 리스크 지배구조는 어떨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그룹으로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외형적으론 계열사 간 리스크 통합관리와 그룹 차원의 리스크 평가를 위한 시스템을 갖췄다. 2006년엔 신용 및 시장리스크와 관련한 바젤II의 요건을 충족하는 리스크측정 시스템도 구축했다. 리스크를 감안해 실적을 평가하는 리스크조정성과평가(RAPM) 도입이 실례다.
08년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리스크 업무의 중요성과 리스크관리부서의 권한과 역할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국내은행 대다수는 이사회 내에 소위원회인 리스크위원회(리스크관리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여기서 실질적인 리스크 관련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이 시각 인기 뉴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우선 국내은행 CRO의 전문성과 독립성 부족을 지적한다. 리스크 운영 및 관리에 대한 권한과 실질적인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CRO의 지위가 불안하다는 것도 문제다. 국내은행의 리스크전담임원은 부행장 혹은 본부장급이지만 대부분이 미등기임원이다. CEO에 의해 언제든 갈릴 수 있는 실정이다. CRO가 이해 상충 여지가 있는 여신 관련 업무를 겸직하는 경우까지 조사됐다. 성과를 내야 하는 여신업무를 내야 하는 동시에 CEO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가 제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은행과 달리 대다수 국내은행의 리스크전담임원들은 독립성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영향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건호 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바람직한 리스크 지배구조 마련을 위해선 금융회사 이사회가 리스크 관리의 총괄책임을 진다는 점을 명문화하고 CRO를 주주총회에서 선출해 CEO의 단기성과 추구를 견제할 수 있는 지위로 격상시키는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