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소통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준 것이 바로 토요타와 삼성이다. 토요타의 진짜 위기는 기술의 위기가 아니었다. 자동차의 결함이 위기의 주범이 아니다. 어떤 기술이건 결함없을 순 없다. 그리고 방대한 세계경영에서 빚어진 관리의 문제도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관리의 시행착오나 오류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토요타의 위기에서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미국의 자국 자동차 산업의 이해관계 등과 얽힌 복잡한 관계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진짜의 위기는 따로 있다. 토요타의 진짜 위기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소통 방식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소통 방식이란 정직이다. 더이상 과실을 숨겨서 넘어가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만큼 눈도 많고 귀도 많아서 세상에 비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토요타가 자동차 결함을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미리 밝히고 리콜을 적극적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위기가 증폭되었을까?
소통방식은 문제 인식에서도 관점의 차이를 준다. 원활한 소통을 하는 곳에서는 문제 인식에서도 보다 다양하고 쌍방향적인 문제인식을 가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문제 인식에서도 자신 위주의 일방향적 문제인식을 가지기 쉽다. 삼성이 애플에 대한 위기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했지만, 문제인식은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삼성 직원들은 아이폰을 못쓴다. 아이폰 쓰다가 임원에게 걸려서 혼난 이야기도 회자된다. 아이폰 숨겨다니는 삼성직원들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 정도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쓰려면 무조건 자사의 옴니폰을 써야 한다. 그게 과연 정말 애사심일까? 그런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통제가 여전히 통할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막는다고 막아지나 말이다. 아이폰을 쓰고싶은 직원들은 회사에선 옴니폰을 쓰고, 밖에선 아이폰을 쓴단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폰을 두개나 사서 이중으로 비용을 지불할까. 그리고 아이폰이 얼마나 쓰고 싶었으면 그걸 감수하고도 쓰나. 이런 상황이라면 옴니폰이 아이폰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열린 소통은 자신에게 유리한 얘기만 듣고, 유리한 얘기만 해서는 이뤄질 수가 없다. 쓴소리도 듣고,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더이상 닫힌 소통으로 관리하고 통제하기엔 너무도 복잡해졌고 다양한 변수들이 생겼고, 통제할 수 없는 틈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닫으려하다 뚫리는 것보다는 열어서 제대로 소통하게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기업 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닫힌 소통은 이제 버려야 할 과거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