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 해외인재에 적극 구애 나선 이유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2010.04.2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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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CEO In & out]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지난 6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주요 계열사 CEO를 대동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글로벌 인재발굴을 위해서다. 김 회장은 9~14일 일정으로 뉴욕, 보스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동·서부를 가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기업 그룹 총수가 신입사원 해외채용 설명회에 직접 나서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박용만 두산 회장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등이 직접 해외채용에 나선 적은 있지만 무게감이나 적극성으로 따지자면 김 회장을 능가하기 어렵다.



글로벌 인재를 찾는 김 회장의 구애는 "사장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김 회장은 미국 뉴욕의 타임워너센터에서 예일대를 비롯한 인근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인학생들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를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사말에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 누구라도 한화를 위해 큰 뜻을 펼칠 수 있는 인재라면, 그에 합당하는 보수와 지위를 충분히 보장할 것”이라며 “능력 있는 직원에게는 사장보다 더 많은 월급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런 생각은 '신의(信義)경영'을 제일 앞에 내세우는 그의 경영철학과 연결된다. 신용과 의리는 김 회장을 숱한 역경 속에서 30년간 한화그룹을 이끄는 원천이 됐다.

그의 신의경영이 빛을 발한 것은 1983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24,600원 ▼200 -0.81%)) 인수 때다. 당시 다우케미컬과의 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지자 김 회장은 직접 한지에 먹물로 ‘나는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명예를 욕보이면서까지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김 회장은 결국 인수 주도권을 쥐었고, 낮은 가격으로 한양화학 인수에 성공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이번 채용설명회에서도 “인간은 자기를 믿고 밀어주는 사람에게는 목숨까지 바친다고 했다”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신용과 의리의 정신을 귀히 여기면서 실력을 겸비한 글로벌 인재를 만나기 위함”이라고 자신의 경영철학에 맞는 인재상을 찾았다.

글로벌 한화 새 동력원 절실

김 회장이 우수한 해외인재 발굴에 적극적인 이유는 2009년 초 선언한 ‘그레이트 챌린지 2011’과 연관이 있다. ‘그레이트 챌린지 2011’은 2011년까지 한화그룹의 해외매출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린다는 미래 성장전략이다.


신년사를 비롯해 이미 여러 차례 글로벌 영토확장을 강조했던 김 회장이 해외인재에게 기대하는 부분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다.

당장 내년까지 성과를 내야하는 상황에서 해외인재 발굴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화그룹은 해외채용 확대를 통해 성장동력을 배양한다는 계산이다.



해외인재가 한화그룹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고령화, 온난화, 삶의 질 문제다. 이 세가지는 김 회장이 지난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들이다.

고령화 문제는 최근 대한생명 (2,825원 ▲30 +1.07%) 상장과 푸르덴셜증권 인수로 확보된 인력으로 노후설계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풀어나간다. 온난화는 한화케미칼 (24,600원 ▼200 -0.81%)의 태양전지와 ㈜한화 (28,700원 ▲350 +1.23%)의 탄소배출권사업 등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삶의 질 문제는 최근 합병한 한화리조트 등 레저 서비스사업부문에서 역량을 발휘한다.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고민을 사업 영역으로 확대하는 청사진을 그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신용과 의리’로 해외인재 잡는다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는 ‘미스터 다이너마이트’로 불릴 정도로 화약 국산화에 집중했던 인물이다. ‘몇십 배의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설탕이나 페인트는 들여오지 않겠다’는 김종희 선대회장의 고집은 한화를 국내 최고의 화약회사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선대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김 회장은 29세라는 나이에 그룹 회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떠안게 됐다. 그 후로 30년. 김 회장은 제2의 창업이라 불릴 만큼 한화의 성장을 일궈냈다. 회장 취임 직전인 1980년 말 5846억원이던 한화그룹 자산을 지난해 말 기준 84조원까지 올린 것도 김 회장의 성과다.

사업영역도 확대됐다. 부친에게 넘겨받은 화학을 비롯한 석유화학 등 제조업분야, 레저분야, 금융분야가 한화를 이끄는 3대 축이다. 특히 최근 대한생명 상장은 한화를 또 한번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에는 성장통도 수반됐다. IMF 외환위기 시절, 개인 주식과 본인의 모든 자산을 담보로 내놓고 심지어 경영권 포기각서까지 쓰는 혹독한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기업 매각 상황에서도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신분보장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00% 고용승계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50~60명의 직원이 구조조정 되자 김 회장은 사내 방송을 통해 “나는 그들의 가정에 고통을 안겨 준 가정파괴범이다”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해외채용 설명회에서도 김 회장은 신용과 의리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화그룹이 글로벌 메이저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도 이는 필수의 덕목이다. 신용과 의리로 똘똘 뭉친 한화그룹의 글로벌 질주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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