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향에 취하고 담백한 찻잎에 가슴이 무너지고"

최병일 기자 2010.04.1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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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푸른 물빛이 구비쳤다. 가슴이 선뜻 내려앉았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매화향과 여린 찻잎의 향내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곳이 화개다. 한겨울에도 칡꽃이 핀다 하여 '화개'라고 불리는 이곳은 차처럼 담백하고 향내가 가시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왕의 녹차'생산 하는 차 명승지
▲차시배지 비석 ▲차시배지 비석


하동 화개에 가면 지천으로 차밭이다. 지리산 자락의 신선한 햇빛과 이슬을 머금고 자란 야생차잎은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차로 소문이 나있다. 향이 깊고 오묘한 맛을 내기 위해 화개 사람들은 찻잎을 따고 수없이 덖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야생차의 진수 답게 하동 화개에서 생산되는 녹차를 '왕의 녹차'라고 불렀다.



삼국사기에 기록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3년), 사신 김대렴이 당나라로부터 차 씨앗을 들여와 처음 재배를 시작한 곳이 바로 하동이라 전해진다. 그만큼 차나무가 자라기에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곳으로 일찌감치 인정받은 것이다.

재배지로서의 역사가 긴 만큼 차와 관련한 유적지나 명인, 이야기도 풍부하다. 현재 하동에는 화개장터 입구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신흥까지 장장 12Km의 산야에 야생의 차밭이 조성되어 그 자체로 비경을 이룬다.
▲차꽃▲차꽃
하동읍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화개 삼거리를 거쳐 10리 벚꽃길을 지나면 쌍계사 근처 마을인 석문 마을과 신촌마을 사이에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면서 생기는 안개가 햇빛과 습도를 조절한다. 심한 일교차와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 깊은 차 맛을 낸다.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주변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 시배지로 지정되었고, 차의 고장이자 성지임을 증명하듯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인근에 자라고 있다.
차시배지와 함께 하동차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정금리 도심마을의 '최고(最古)차나무'다.
▲장군차나무 ▲장군차나무
화개면 정금리 도심마을에 위치한 도심다원은 한국에서 제일 크고 수령이 천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 차나무(경남보호수 264호, 높이 4.2m, 둘레 57cm, 지름 18cm)를 보유하고 있다.

눈부신 매화비가 내리는 벚꽃 십리길
▲벚꽃 십리길 ▲벚꽃 십리길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 전에는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였다. 김동리의 '역마'에는 질펀한 장터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청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고, 경상 전라 양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물 장사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쪽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례 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 해물 장사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간조기, 간 고등어들이 들어오곤 하여"

하지만 번성했던 옛 영화는 스러져 버렸다. 장터 입구 한 켠에 할머니들이 고사리나 더덕 등을 파는 쓸쓸한 풍경이 화개장터의 모습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벚꽃 십리길은 해마다 4월 중순 무렵 이면 눈부신 계절이 된다. 10리 매화 길 매화꽃이 떨어질 때면 흡사 매화비가 내리는 것처럼 사방이 온통 하얗다. 어른거리던 그리움이 매화꽃 속에 숨어서 끈질기게 가슴속으로 파고드는데 정작 비를 맞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하기만 하다. 그래서 시인은 노래를 불렀다.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 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강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의 일부 김용택

범패 소리 은은한 쌍계사, 하동의 명물 삼성궁
▲쌍계사 전경▲쌍계사 전경
화계장터를 넘어 지리산 쪽으로 오르다보면 쌍계사가 나타난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 대비 삼법 두 화상이 창건했다. 천년고찰이라는 역사적 의미외에도 불교 음악의 거장 진감국사가 아름다운 범패를 울렸던 곳이기도 하고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같은 고승들이 차와 벗하며 도를 닦았던 곳이기도 하다.

쌍계교를 지나면 일주문이 나온다. 쌍계사는 일주문을 가운데 두고 두개의 골물이 합쳐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쌍계사 팔영루에는 진감국사의 혼이 깃든 범패 소리가 아직도 아른거린다.

계단을 올라 대웅보전에 이르면 바위벽에 붙은 동자상이 있다. 선한 아이의 눈빛에는 불심의 근원처럼 천진난만한 순수가 깃들어 있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문의 055) 883-1901

지리산 청학동에 위치한 삼성궁은 마이산의 돌탑과 비견될 만한 1천5백여개의 돌탑이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삼성궁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배달겨레의 성전이다. 20년 전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선도를 이어받은 한풀선사가 수자(修子)들과 함께 수련하며 하나 둘 돌을 쌓아올려는 이것이 청학동에 명소가 되었다.

이 돌탑은 이곳에서 원력 솟대라고 부른다. 삼한 시대에 천신께 제사 지내던 성지, 소도(蘇塗)엔 보통사람들의 접근을 금하려 높은 나무에 기러기 조각을 얹은 솟대로 표시를 했다. 지금 성황당에 기원을 담듯, 소원을 빌며 지리산 자락의 돌로 솟대를 쌓아 옛 소도를 복원하고 있다.

3천333개의 솟대를 쌓아 성전을 이루고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 문화를 되찾아 홍익인간 세계를 이루자며 무예와 가, 무, 악을 수련하는 이들의 터전이다.

산길을 오르다 장승이 서있으면 '징을 세 번 치고 기다리세요'라고 쓰여진 팻말이 보인다. 팻말에 쓰인대로 징을 세 번 치면 수도자가 나와 삼성궁안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문의 055)884-1279

하동야생차문화축제
▲하동야생차 축제중 외국인들이 체험하는 모습 ▲하동야생차 축제중 외국인들이 체험하는 모습
하동은 신라시대부터 차 시배지였던 명품 녹차의 생산지다. 하동은 이를 알리기 위해 해마다 '하동야생차 문화축제'를 개최했다. 올해로 15회를 맞는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오는 5월1일부터 5일까지 화개면 일원에서 개최된다.

'왕의 녹차! 느림, 비움, 그리고 채움'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슬로우시티 하동의 매력과 더불어 차 문화가 가진 여유와 느림의 철학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된다.

주요행사로는 최참판댁 오색 찻자리, 전국 3천명의 차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대한민국 차인 한마당과 섬진강 달빛차회 등의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 녹차요리콘테스트, 홍신자와 함께하는 차 명상 여행도 진행될 예정이다.

주요 행사들은 차문화센터, 차시배지, 녹차연구소를 포함하는 그린티밸리존, 평사리, 최참판댁, 매암차 박물관이 있는 슬로라이프존, 쌍계사가 있는 팬시존, 화개장터의 해피패밀리존 등 4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동야생차문화축제는 2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최우수 문화관광 축제로 선정된 바 있다.
하동군 문화관광과 055) 880-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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