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관료 가운데는 이런 운전자와 비슷한 이들이 많다. 고도성장의 경험에 빠져 고성장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사실 한국 경제라는 자동차의 성능이 괜찮을 때야 그런 경제 운용도 나쁠 게 없다. 그런데 자동차의 성능이 예전 같지 않고 보니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번 정부 초기 실세 경제 관료들이 그랬다. 그들은 불확실한 저성장 국면의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낡은 목표인 고도성장만을 추구했다. 고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적이었고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환율이 뛰는 것을 묵인 혹은 방조해야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기획재정부 차관이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대외적 충격으로 환율이 크게 뛰면서 충격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비유하자면 무리한 속도를 내던 낡은 차는 도로마저 급경사로 접어들자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운전자 격인 당사자들은 이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들은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자신들의 고성장 정책이 없었다면 금융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더욱 나빠졌을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금리 인상을 최대한 미루면서, 환율을 올려가면서까지 성장률을 높이려 하지 않을까가 관심사다. 성장론자들의 컴백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금융위기의 영향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난 이명박 정부는 경제 국면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위기관리 국면을 매듭짓고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 바꾸고자 한다. 그래야 임기 말 이번 정부가 출범 당시 공언한 7%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저금리와 고환율로 고도성장을 달성한 역사가 우리에게 언제였던가 가만히 생각해보자.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는 인위적 고환율 상태를 유지해 매년 8%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 대가도 컸다. 두 자릿수의 금리와 물가상승률이 그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의도적인 저금리로 반짝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자산시장 거품과 붕괴로 이어졌다. 짧은 기쁨과 긴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저금리와 고환율의 혜택을 제대로 누린 때는 1980년대 중후반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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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기는 정부의 성장 정책이 주효해 우리 경제의 전성기를 누린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1980년대 초반부터 물가 안정정책으로 선회한 것에 더해 대외 경제 정책 여건이 워낙 좋아 조성된 황금시대였다. 고속질주의 경험에 매몰된 경제 관료들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경제 안정이지 고성장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