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매력이자 마력은 바로 터무니없이 쉬워 보이는 겉모습에 있다. 가만히 있는 볼을 오로지 내 맘대로 이리저리 움직여 공보다 훨씬 큰 구멍에 굴려 넣는 게임. 세상에 이렇게 쉬운 거저먹기가 어디 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자신감이 만용을 부르고 만용은 치욕을 안긴다. 핸디캡이 18이라면 매홀 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매홀 버디 아니면 파를 하겠다고 덤비는 게 만용에 찬 보기플레이어의 실제 모습이다. 그래서 묘하게도 보기를 피해가며 더블보기 트리플보기 더블 파까지 엮어가고 간혹 파도 건지지만 결국 90을 훌쩍 넘겨버리고 만다. 보기플레이어에겐 보기로 막으면 잘 한 것이다. 보기 퍼트가 굿 퍼트란 말이다.
OB를 내거나 볼을 해저드에 빠뜨려 더블보기 이상의 스코어가 예상되면 보통 골퍼들은 자포자기해 불필요하게 많은 타수를 까먹지만 진짜 골퍼는 어떤 경우에도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추구한다. 이런 골퍼는 헤매는 듯하면서도 결국엔 자신의 리듬을 되찾아 스스로의 플레이를 펼친다. 파를 넘어선 스코어가 항상 실패한 것은 아니다. 홍수가 나면 제방을 잘 지켜 범람을 막는 것이 최선이듯, 위기에 처했을 때 현명한 대응으로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골퍼의 자세다.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오른 골퍼들도 어떤 홀에선 '괜찮은 보기(good bogies)'로 막는데 급급하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훌륭한 보기'들이 게임의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것을 기억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