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보기는 골프의 청량제

방민준 골프에세이스트 2010.04.0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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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방민준의 거꾸로 배우는 골프

골프는 만용을 엄하게 벌하는 게임이다. 무모하게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골퍼를 심하게 나무라는 게임이다. 골프의 길에 들어서긴 했으나 아직 산전수전을 다 겪어보지 못하고 골프와의 한판승을 욕심내며 칼을 갈고 있는 골퍼들은 대개 부푼 기대와 함께 근거 없이 뻥튀기 된 '나도 할 수 있다'는 만용을 갖게 마련이다.

골프의 매력이자 마력은 바로 터무니없이 쉬워 보이는 겉모습에 있다. 가만히 있는 볼을 오로지 내 맘대로 이리저리 움직여 공보다 훨씬 큰 구멍에 굴려 넣는 게임. 세상에 이렇게 쉬운 거저먹기가 어디 또 있단 말인가.



TV로 중계되는 골프를 보면서 골퍼들의 마음속엔 점점 더 골프가 누워서 떡먹기란 느낌이 자리 잡는다. 아직은 미세한 몸과 마음의 치열한 각축전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쉬운 스윙과 척척 들어가는 퍼팅에 괜히 덩달아 '나라고 못하란 법이 있어?'라는 허튼 자신감이 마구 부풀어 오른다. 이 터무니없이 쉬워 보이는 골프가 결국은 '끝없이 어려운 게임'으로 둔갑하면서 우리 모두가 서서히 골프광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자신감이 만용을 부르고 만용은 치욕을 안긴다. 핸디캡이 18이라면 매홀 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매홀 버디 아니면 파를 하겠다고 덤비는 게 만용에 찬 보기플레이어의 실제 모습이다. 그래서 묘하게도 보기를 피해가며 더블보기 트리플보기 더블 파까지 엮어가고 간혹 파도 건지지만 결국 90을 훌쩍 넘겨버리고 만다. 보기플레이어에겐 보기로 막으면 잘 한 것이다. 보기 퍼트가 굿 퍼트란 말이다.



가령 티샷이 OB가 나고 두번째 티샷은 벙커에 빠졌다고 치자. 4온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더블보기를 하면 아주 훌륭하고 트리플보기 이상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낙담해 포기하지 않고 네번째 샷을 그린 주변에 떨어뜨린 뒤 정성어린 어프로치로 1퍼트로 막았다면 그야말로 '나이스 더블보기'가 아닌가. 이때 사용하는 '나이스'나 '굿'이란 수식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진정한 찬사인 셈이다.

OB를 내거나 볼을 해저드에 빠뜨려 더블보기 이상의 스코어가 예상되면 보통 골퍼들은 자포자기해 불필요하게 많은 타수를 까먹지만 진짜 골퍼는 어떤 경우에도 집중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추구한다. 이런 골퍼는 헤매는 듯하면서도 결국엔 자신의 리듬을 되찾아 스스로의 플레이를 펼친다. 파를 넘어선 스코어가 항상 실패한 것은 아니다. 홍수가 나면 제방을 잘 지켜 범람을 막는 것이 최선이듯, 위기에 처했을 때 현명한 대응으로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골퍼의 자세다.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오른 골퍼들도 어떤 홀에선 '괜찮은 보기(good bogies)'로 막는데 급급하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훌륭한 보기'들이 게임의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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