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공개 이런 식은 안 되죠"…고지거부 매해 증가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0.04.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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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하면 뭐하나요. 뺄 것은 다 빼고 신고하는데…."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국회의원 재산변동 내역을 공개한 2일 국회 사무처 한 관계자의 말이다. 독립생계 등을 이유로 가족의 재산 고지를 거부하는 의원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위법은 아니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공직자 명 검증을 위한다는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직계존비속 재산의 경우 독립생계를 유지하거나 타인이 부양할 경우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따라 이번 국회의원 재산변동 내역 공개에서 전체 대상 293명 가운데 107명(36.5%)이 부모나 자식 등 직계 존비속 일부의 재산을 고지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3명 중 1명은 부모나 자녀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셈이다. 17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08년 3월에 발표한 내역에서 전체 대상 299명 가운데 92명이 고지를 거부한 이래 18대 국회 들어 지난해 전체 대상 292명 가운데 101명이 고지를 거부한 뒤 계속 증가 추세다.

재산 상위 리스트에 오른 의원들 가운데 가족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의원도 적잖다.
886억여원으로 전체 의원에서 재산 상위 3위를 차지한 조진형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장남과 손자, 손녀의 재산을 신고하지 않았다. 4위를 기록한 같은 당 강석호 의원과 6, 7위를 차지한 정의화 임동규 의원, 8위의 김정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 의원도 부모나 자녀, 손자, 손녀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지난해 재산상위 '톱10'에 들었다 16위로 '밀려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역시 계속해 장남과 손자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장남과 손자의 재산을 빼고 신고했다.

재산고지를 거부한 107명의 의원은 정당별로 한나라당 62명, 민주당 27명, 자유선진당 7명, 미래희망연대 6명, 창조한국당 2명, 민주노동당 1명, 국민중심연합 1명, 무소속 1명이었다.

재산 고지 거부 대상자가 부모에 해당하는 경우는 55명이었다. 시부모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여성 의원은 10명으로 집계됐다. 자녀나 손자, 손녀의 재산을 공개하지 않은 경우(부모와 겹치는 경우 포함)는 46명이었다.


의원들이 가족의 재산 고지를 거부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대체로 공개된 재산이 늘어날 수 있는 데다 가족의 사생활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한 초선 의원은 "형제가 부모를 모시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고지 거부가 가능하다고 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부모님도 자식도 따로 살고 계신데 정치인 자식이나 부모를 뒀다고 해 무조건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적 특성을 감안할 때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을 분산해 은닉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연합 정책실장은 "제도의 허점을 활용한 재산고지 거부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며 "벌을 주려는 게 아니라 불법·편법 재산 축적 등 부정부패를 사전에 예방하려고 제도를 도입한 것인데 이런 식으로는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들도 자신들이 대상자라고 해서 마냥 모른 척할 게 아니라 제도 개선에 앞장 서야 한다"고 밝혔다.

장정욱 참여연대 행정감시팀 간사도 "재산 고지 거부라는 예외 조항이 남발되면서 제도는 존재하는데 효과는 반감되는 상황"이라며 "직계존비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폐지하거나 상당 부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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