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팔려다 쫓겨났던 청년이 30대 그룹회장에

머니투데이 김병근 기자 2010.04.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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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창립 30주년

"안 산다니깐. 귀찮게 하지 말고 얼른 나가. 밖에 누구 없어?"

1971년 부산. 어느 중소기업 사장실에서 한 브리태니커사전 세일즈맨이 이런 호통 소리를 들으며 쫓겨났다. 젊은 세일즈맨은 창피해서 비서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황급히 출구로 향했고 비서는 마치 "거봐, 안 된다고 했잖아"라고 말하듯 그의 처량한 뒷모습을 흘겼다.

잠시 "세일즈맨은 나랑 안 맞나봐"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굶는거야"라고 다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거래를 성사시켰다. 당시 사전을 필요로 할 것 같지 않은 작은 합판 가게 사장과의 거래였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CEO로 꼽히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윤 회장은 고단했던 젊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내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 30년 전인 1980년 남대문 인근에 직원 7명의 학습지 출판사 웅진씽크빅(옛 웅진출판)을 설립했다.



이렇게 시작한 웅진그룹이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교육출판에서 시작해 환경생활, 태양광, 소재, 건설레저, 식품, 서비스금융, 지주회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15개 계열사를 둔 매출 5조원 규모의 재계 3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윤 회장은 그룹의 성공 DNA로 주저 없이 '또또사랑'을 첫 째로 꼽는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그룹의 경영 정신이 '또또사랑'이다.

윤 회장은 이날 창립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또또사랑의 경영 정신이 문화로 정착해 30년 성장의 뿌리로 작용했다"며 "80년대만 해도 경영정신에 '사랑'을 쓴 건 웅진이 처음이었고 지금도 사장단이나 임원회의에서 사랑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룹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1일 창립 30주년을 맞아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룹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또사랑'이 정착되면서 투명경영이 자연스레 두 번째 성공 DNA로 자리 잡았다. "서로 사랑을 지속하려면 신뢰가 축적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투명해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투명경영 때문에 가슴 아팠던 적도 있었다고 윤 회장은 회고한다. "당시에는 모든 손익을 매달 공개할 정도로 투명성에 만전을 다 했습니다. 다만 친인척은 원천적으로 납품이 되지 않도록 한 점은 지금도 미안합니다."



투명경영과 또또랑이 정착된 후, 윤 회장은 '창조경영'과 '혁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품을 만들 때는 남이 안 만드는 것으로, 또 남이 만들었어도 전혀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차별화에 주력했다.

세계 최초의 '렌탈 서비스'와 국내 최초의 '곡물 음료'가 대표적인 성과다.



윤 회장은 "IMF 시절 창고에 쌓여 있는 제품을 보며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는 고민 끝에 렌탈을 생각해냈다"고 회고한다. 그는 "경쟁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이 경쟁력을 확보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 윤 회장은 사장단과 임원들에게 자주 '숙제'를 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웅진코웨이 연구소장에게 "생활가전 원가를 50% 절감하라"는 숙제를 던졌다고 한다. 싼 부품을 써 10% 까지는 절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 혁신은 R&D에서 나오기 때문에 '남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주문이었다.



이렇게 내 준 숙제들을 두 달에 한번 평가하고 연말에는 '혁신대회'를 열어 1년간의 숙제를 전 계열사가 공유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하지만 윤 회장은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고 한다.

"연말에는 그룹 전체가 모여 혁신사례를 공유하는 혁신대회를 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데 조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어요.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재미가 있어야 하죠."

윤 회장은 '재미'를 위해 주말이면 여지없이 소위 '논다'고 한다. 업무적 약속을 잡는 대신 바둑과 골프, 등산 등 취미생활로 주말을 보낸다. '펀'(Fun) 경영론인 셈이다.



그는 "회사와 가족 다음으로 노는 걸 사랑하고 주말에 놀 생각에 금요일부터 설레기도 한다"면서 "일은 집중이 중요하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고 역설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기업도 재미가 있어야 열심히 일 할 수 있다"며 "평소 '긍정, 신기, 적극, 꿈' 같은 단어들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웅진이 '뜻을 확실하게 세운다'(이립)는 '서른살'을 맞은 이날 윤 회장은 웅진을 세계 1위 기업이자 젊은 사람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1위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15년까지 그룹 외형을 매출 15조원, 영업이익 2조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각오다.



웅진코웨이 (64,000원 ▼5,400 -7.78%)웅진씽크빅 (1,713원 ▼17 -0.98%), 극동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의 기존 사업이 순항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까지 태양광 사업에 30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특히 태양광 사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윤 회장은 "처음에는 올라가는 게 어려웠지만 이제는 각 계열사의 기존 사업들이 탄력을 받을 정도로 상당히 활성화됐다"며 "목표를 과감히 잡고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잡아뒀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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