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사모펀드를 시장에 돌려주자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2010.03.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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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사모펀드를 시장에 돌려주자


요즘 '펀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모펀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모펀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면 잠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펀드는 자본시장의 종주국인 영미에서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대공황 직전인 1920년 펀드의 급성장이 있었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자 일반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투자를 대행하는 주식형펀드가 인기를 모은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주가가 폭락하자 펀드투자자는 당연히 큰 손해를 보았는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펀드운용자가 투자자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몰두했고, 그 결과 투자자의 손실이 증폭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미국 의회의 조사가 있었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자 펀드에 대한 이러저러한 규제가 1940년 법규로 도입되었다.



본래 시장자율을 존중하는 미국의 전통이 있었던 탓에, 새로 도입된 규제가 모든 펀드에 적용되지는 않았다. 일반투자자가 아니라 전문투자자 또는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펀드의 경우에는 아무런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예전처럼 시장자율이 지배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이 바로 '사모펀드'다.

일반인과는 거리가 있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제도는 아니지만 사모펀드는 자본시장 발전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자본시장이 부활할 때 자본시장과 투자은행의 성장을 뒷받침한 것이 바로 사모펀드다.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벤처기업이 등장하자 이들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사모펀드로 벤처캐피탈이 나타났다. 산업의 트렌드가 변화하며 구조조정이 요구되자 구조조정 자금을 공급하며 고수익을 노리는 사모펀드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른바 '벌처펀드'(Vulture fund)였다. 자본시장이 실물의 성장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신생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기능과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기능을 원활히 수행해야 한다. 비유한다면 상수도, 하수도가 제대로 있어야 물 흐름이 막히지 않는 것과도 같다. 미국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는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의 상황은 어떠한가. 진정한 사모펀드는 전무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규제가 진정한 사모펀드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법에 사모펀드라는 용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법이 정한 사모펀드는 무늬만 사모펀드일 뿐이다. 운용목적, 조직형태, 운용자, 자금조달방법 등 펀드운용의 세세한 측면에 여러 가지 규제를 붙인 뒤 이 규제 하에서만 설립을 허용한다. 미국의 사모펀드가 공적 규제가 없는 '시장자율' 영역에 존재하는 펀드를 허용하기 위함이었음을 상기할 때 사모펀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합한 상황이다.

2008년 자본시장법이 제정될 때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투자자 보호를 선진화하고 투자은행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것이 제정취지로 선언됐다. 그 취지에 맞추어 사모펀드의 자유화도 추진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실 관련 논의가 정책당국 내부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8년말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사모펀드 자유화에 대한 논의는 중단되었다. 선진국 자본시장에서 시장불안정성이 있을 때마다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헤지펀드'(hedge fund) 역시 사모펀드의 일종이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제 개선 중단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헤지펀드에 대한 적절한 규제방법이 투명성 제고라는 선에서 선진국의 규제논의가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의 선택범위도 다음의 두 가지로 분명해졌다. 예전과 같이 기형화된 사모펀드제도를 유지하며 개발도상국의 규제체계를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현존하는 선진국 간에 합의된 논의에 기초하여 규제를 개선할 것인지. 금융산업과 시장의 성숙을 추구한다면 선택은 명백하다. 사모펀드의 운용은 완전 자유화하고, 정보투명성은 확보해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식의 규제체계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 세계 금융위기가 더이상 규제 개선의 중단을 옹호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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