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종장병 가족의 상실감과 배신감

머니투데이 배혜림 기자 2010.03.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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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실종장병 가족의 상실감과 배신감


"함장을 다시 불러주세요", "이 사람들도 자세히 얘기를 못해요. 나름대로 교육받고 와서 가만히 서있다가 한마디씩 하는데 모르겠어요"

백령도 서해상에서 침몰한 초계함 천안함 실종자 가족의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해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7시간여 만에 현장 상황 설명회를 열었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내 놓으라'는 실종자 가족의 요구를 냉정하게 외면했다.



천안함 생존자 대표로 설명회에 나선 함장 최원일 중령으로부터는 "순식간에 함정이 두 동강 났다. 함정을 인양한 뒤 조사가 이뤄져야 폭발원인을 알 수 있다"는 말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군 당국의 추가 설명도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 있었다면 정확한 폭발원인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고 사고 원인의 여러 가능성을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실종된 동료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도리다.



그럼에도 생존자들이 군 당국의 설명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실종자 가족과의 만남에서 황급히 자리를 뜨는 등 '쉬쉬'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입 맞추기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은 "마치 미리 시나리오를 짠 듯 군 당국과 함장과 장교들의 말이 똑같다"고 주장한다.

또 "뭔가 드러나면 안 되는 점이 있으니 언론 통제까지 하며 숨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함대사령부에서는 무장한 병사가 가족과 몸싸움을 벌이다 총구를 겨누는 일까지 발생했다. 실종자 가족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배신감까지 느끼고 있다.

해군의 대응에 분노한 실종자 가족은 결국 '대표단'을 구성, 사고해명 및 현장수색 상황에 대한 생중계를 요구하고 있다. 또 작전지역에서 민간인 구조 활동을 벌이겠다는 의사도 표시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직접 봉사활동에 나서겠다고 했을까.


이번 참사의 희생자는 대부분 꽃다운 나이의 사병이다. 조국을 위해 차가운 바다에 몸을 맡겨야 했던 이들을 국가가 보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아들 생각에 오열하는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신속하게 구조작업을 벌이는 일만큼 중요한 국가의 책무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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