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불 서랍장에' 재연…총리공관 현장검증(상보)

머니투데이 배혜림 기자 2010.03.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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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수뢰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헌정 사상 첫 총리공관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22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2006년 12월20일 오찬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며 세 시간 동안 검증 작업을 벌였다.

재판부의 현장검증은 주차장에서 본관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경로부터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은 현관 앞 도로에서 오찬장 창문을 통해 내부가 보인다는 점을 강조하며 '수뢰가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주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검찰은 "굳이 정원이나 도로에 나와서 안을 들여다 볼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며 초반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공관 내부에 대한 검증은 오찬이 끝나고 참석자들이 오찬장을 빠져 나오는 장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 전 총리는 '오찬을 마친 뒤 돈 봉투를 챙길 여유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오찬장을 나서기 전 비서과장이나 공관팀장, 경호원이 시야에 없는 틈을 타 돈 봉투를 챙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현장 참석자 중 한 명이 오찬장 문을 열고 나오면 7m 거리에 위치한 소파에서 비서과장이 오찬장 앞으로 다가가는 장면을 검증했다. 오찬장 문이 열린 뒤 비서과장이 손가방 등 소지품을 챙겨 오찬장 앞까지 가는 데 소요된 시간은 5초였다.



◇검찰 "돈 봉투 서랍장에 넣었다" 재연=특히 2만 달러와 3만 달러가 든 봉투 2개를 의자에 꺼내놓는 장면은 한 전 총리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본격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재연됐다. 먼저 진행된 변호인의 재연에서 곽 전 사장은 "일어서면서 (상체를)숙인 채로 봉투를 하나씩 꺼내 의자에 뒀다. 봉투는 테이블 방향으로 겹치지 않게 놨다"며 당시의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연이어 진행된 검찰의 재연에서는 한 전 총리가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하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곽 전 사장을 제외한 참석자들이 먼저 나가고 뒤이어 곽 전 사장이 의자에 봉투를 놓은 뒤 따라 나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어 한 전 총리의 역할을 한 검사는 봉투를 테이블 뒤에 있는 서랍장 왼쪽 상단의 서랍에 넣고 오찬장을 빠져나오는 모습을 재연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전 총리는 낮은 목소리로 "나는 저 서랍 쓴 적도 없는데"라고 말했다. 서랍장이 뇌물 보관처로 지목되자 재판부는 오찬장 밖에서 서랍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는지 검증하기도 했다.


◇총리 남은 오찬장 '10여초', 경호원 시야 벗어난 시간은?=식사를 마친 뒤 복도를 지나 공관을 떠날 때의 상황과 동선 등도 재연됐다.

참석자들이 오찬장을 빠져나간 순서는 한 전 총리의 수뢰 여부를 가르는 핵심 사안이기도 하다. 앞서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가장 마지막에 나왔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경호원은 "총리가 오찬장을 늦게 나온 적은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날 검증 결과 참석자가 봉투를 놓고 오찬장을 빠져나오는 데 15초, 현관까지 걸어 나가는 데 4~5초가 추가 소요됐다. 참석자 가운데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이 오찬장을 지나 현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21초였으며 돈 봉투를 서랍장에 넣고 일행을 따라 나가는 데는 34초가 걸렸다.

재판부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과 함께 남아있거나 혼자 오찬장에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0여 초 가운데 비서과장, 공관팀장, 경호원 등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인지, 그 시간 동안 의자에 놓인 봉투를 들어 오찬장 안 쪽에 놓인 서랍장에 넣는 것이 가능한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날 검증에 앞서 과거 오찬장으로 쓰였던 현재의 집무실을 2006년 12월20일 오찬 당시의 모습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는 검찰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집무실에는 오찬 당시 쓰였던 원형 테이블과 의자 4개, 서랍이 달린 장식장, 에어컨, TV, TV받침대 등이 설치됐다.

앞서 곽 전 사장은 법정에서 "다른 참석자들이 오찬장을 빠져 나간 뒤 한 전 총리와 단 둘이 남아있을 때 5만 달러가 든 돈 봉투를 의자에 놓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그는 '돈을 놓는 모습을 한 전 총리가 봤는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한 전 총리는 검증이 시작되기 15분 전 총리공관에 도착, "오랜만에 온다"라고 짧게 말한 뒤 본관 내부에 들어섰다. 현장검증 과정에서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재연을 지켜보거나 창밖을 바라보며 "눈이 정말 많이 내리네요. 좋은 날이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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