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공모주, 기관이 '예약 장사'

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2010.03.22 07:18
글자크기

기관, 웃돈 받고 배정분 사전 매매… 사실상 '공모 대행업'

오는 5월 상장되는 삼성생명의 기관 공모 예정물량이 장외에서 편법 거래되고 있다.
공모에 참여할 일부 기관들이 웃돈을 받고 공모에서 확보할 물량을 개인들에게 팔아넘기면서 시장 질서를 흐트러 뜨리고 있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모 장외주식 거래사이트는 현재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삼성생명 공모주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 5000주 한도로 진행됐던 1차 청약은 이미 마감됐고 2차 청약이 진행 중이다. 1차 청약 당시 판매 가격은 '공모가+2%'였지만, 인기가 높아지면서 2차 청약은 '공모가+10%'로 가격이 올랐다.



사이트 관계자는 "공모가+2%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에 계약과 동시에 전체 금액을 완납하게 했지만 곧바로 판매가 끝났다"고 밝혔다. "2차 판매는 계약금만 입금하면 청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삼성생명의 장외 거래 가격은 12만원 수준이다.
공모가가 10만원일 경우 여기에 5%를 더 얹어 준다고 하더라도 10만5000원에 살 수 있어 장외가보다는 저렴하다. 물론 공모가 10만원보다는 비싸지만 높은 청약 경쟁률로 원하는 물량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삼성생명 공모 일정이 아직 확정도 안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을 상대로 사전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것은 사전에 협의가 이뤄진 기관으로부터 공모 물량을 받기 때문이다. 한 장외 중개인은 "개인들은 공모에 참여할 저축은행, 은행, 증권사 등의 배정물량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장외 중개인들은 수요예측에 참여할 기관들과 사전에 협의, 이 기관의 공모 물량을 살 투자자들을 모집한다. 기관은 공모에 참여해 물량을 배정받은뒤, 사전 예약한 개인들에게 상장 이전에 주식을 팔아 넘기는 것이다. 기관들이 사실상 수수료를 받고 개인들에게 '공모대행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일반 투자자들은 일정 계약금을 낸뒤, 기관이 공모신주를 배정받게 되면 나머지 잔금을 입금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기관은 상장 당일 개장전에 투자자의 계좌로 배정받은 신주를 넘겨준다. 공모가격이 수요예측 가격보다 비싸 기관이 공모주를 배정받지 못하면 계약은 취소되고 투자자는 계약금을 돌려 받는다.


기관은 상장후 주가와 관계없이 개인들로부터 무위험 수익을 확보할 수 있고, 개인은 현재 장외거래 가격보다는 낮은 수준에서 원하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삼성생명뿐 아니라 최근 신규 상장한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 SPAC)등 일부 종목에서도 이같은 편법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의 경우 상장규모가 크고 개인들의 관심이 높은데다 최근 대한생명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사전 편법거래도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거래는 '불법'은 아니지만, 명백한 편법이라는게 시장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 장외 주식 거래 전문가는 "기관이 사전에 공모주를 매매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지만 명백한 합법이라고 보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한 증권사의 IPO 담당자는 "음성적으로 이런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계약 당사자간 계약이어서 제한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는 팔짱을 끼고 있다. 거래소와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은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관들이 개인을 대신해 '위장공모'에 나서는 것은 기관공모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기관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물량을 배정하는 것은 공모실패 확률을 낮춤과 동시에 상장후 기업의 주가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분쟁의 소지도 많아 공모주 시장 자체가 혼탁해질 우려도 크다.
한 장외거래 전문가는 "기관이 아예 특정 거액 투자자의 요청을 받아 청약대행을 해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상장 당시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거래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