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어느새 20년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10.03.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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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교보생명 반세기가 만들어 낸 것들

교보생명의 2010년은 특별하다.

때로는 시심으로, 때로는 희망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어온, 교보생명의 광화문 글판이 올해로 20살이 됐다. 또 종로구 종로1가 1번지를 문화의 샘으로 만들어 온 교보문고는 30살이 됐다.

각각 약관(20세, 弱冠)과 이입(30세, 而立)의 해를 맞은 것. 1958년에 창립해 50대 초반의 나이가 된 교보생명에게는 20살과 30살의 자식이 있는 셈이다. 사람으로 치면 아직 젊은 나이지만 100년 기업이 드문 재계에서는 상당한 세월의 두께로 다가온다.

20년째 제자리 광화문글판…분가도 앞두다



20년을 맞은 광화문 글판이 봄을 맞아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61번째 글판이다.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 아기 낳으면 마음을 환히 적시리라’



이번 문안은 장석남 시인의 <그리운 시냇가>에서 발췌했다. 24자에 불과하고 세줄이지만 조화와 배려가 모두 담겼다. 서로를 배려하며 조화로운 삶을 이어가는 시냇가 옛 마을의 모습을 통해 주변을 둘러싼 갈등을 불식시키고 화합과 상생의 마음으로 따스한 봄을 맞자는 뜻을 전한다.

1년에 4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문안을 선보여 온 광화문 글판은 지난 1991년 1월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처음 걸렸다. 당시 첫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지금과는 달리 딱딱한 구호로 계몽적 성격의 표어와 격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 신 창업자는 새로운 의견을 내놨다.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했던 것.


이듬해인 1998년 봄에는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고은의 시 <낯선 곳>)라는 문안이 걸리며 처음으로 시심이 녹아들었다.

그해 겨울에 게시된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고은 창작)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신용호 창업주의 아들인 신창재 현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던 2000년 5월에 걸렸던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고은의 시 <길>)도 역시 희망의 송가였다. 회사 측에서는 이를 교보생명의 각오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고도 소개했다.



광화문 글판 문안은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회’을 통해 선정된다. 선정위원들의 추천작과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민들의 공모작을 놓고 여러 차례의 투표와 토론을 거쳐 최종작을 선정한다.

지금까지 광화문 글판을 가장 많이 장식한 작가는 고은 시인(7번)이었다. 또 김용택 시인은 3편, 도종환·정호승·정현종 시인과 유종호 평론가는 각각 2편의 작품을 글판에 올렸다.

이 밖에도 공자, 헤르만 헤세, 알프레드 테니슨, 파블로 네루다, 서정주 등 국내외 현인과 시인 40여명의 작품이 광화문 글판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문안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 씨는 “광화문 글판은 어딜가나 볼 수 있는 흔한 명언, 명구와는 달리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사색에 잠기게도 만들며, 때로는 장난스럽기까지 한 점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광화문 글판은 사람이 아닌데도 2007년 12월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8년 3월에는 한글문화연대가 주최하는 ‘우리말 사랑꾼’에 선정되기도 했다.

광화문 글판은 현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에도 강남 교보타워, 천안 계성원(교보생명 연수원), 대전·부산·광주·제주도 사옥 등 총 7개 지역에 내걸리고 있다.

한편 교보생명은 지난 2008년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광화문 글판 모음집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를 발간했으며, ‘광화문 글판 블로그’ (http://blog.naver.com/kyobogulpan)를 만들어 소통의 경로를 넓히고 있다.



광화문 글판이 20살이 되니 부모를 떠나 먼 곳으로 떠나려는 듯 여기저기서 찾는 이도 많아졌다는 게 교보생명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대검찰청과 서울 노원구청 같은 정부기관과 지자체에서 광화문 글판을 써도 좋겠느냐는 문의가 있었다는 것.

감추고 숨기려는 범죄와 밝히고 들추려는 추격의 냉기가 감도는 검찰에서 시심과 은유로 상징되는 광화문 글판을 통해 여유와 인정(人情)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책의 바다, 문화의 샘물…서른살 교보문고



교보생명의 또 다른 자식이자 분신인 교보문고도 올해가 특별하다. 서른살 교보문고는 4월부터 5개월간 장기 휴가를 갖는다. 더 나은 독서환경 제공을 위해 내부단장(리노베이션)을 실시하는 것이다.

교보문고가 생긴 것은 컬러TV가 처음으로 등장하던 1980~81년 전후. 광화문 글판처럼 교보문고를 제안한 이도 신용호 창립자였다. 그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광화문 네거리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은 빌딩 지하에 거대한 ‘열린 책방’을 세웠다. 그 당시 이미 단일층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면적을 자랑했다.

'국민교육 진흥의 실천적 구현', '독서인구 저변확대를 통한 국민정신문화 향상'이라는 원대한 창립이념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교보문고는 책의 바다였다. 업계 최초로 복합지식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이전까지의 폐쇄형 서점 모형에서 벗어나 독자들의 책을 직접 볼 수 있는 개방형 서점 모형을 제시했다. 개점부터 폐점 때까지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있어도 뭐라 하는 이는 없었다. 몰래 가지고 나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1991년에 광화문점 개점 10주년을 맞아 1년 동안 전면 개보수를 실시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다시 문을 연 1992년 5월30일에는 11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전까지 광화문점 평균 방문객 수는 하루 평균 약 4만명이었는데 단숨에 2.6배 이상의 독서가들이 몰린 것이다.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앨빈 토플러,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렀고, 또 IMF 위기시절 한 외국 정부 관계자는 광화문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걱정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5개월간 문을 닫는 교보문고는 리노베이션의 콘셉트를 ‘꿈꾸는 사람들의 광장’(드림 스퀘어)으로 잡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소통하는 장소, 오프라인 서점의 전통적인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 책과 서점의 미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장소로 만들 예정이라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신용호 회장은 ‘돈벌이로 책방을 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이 확고했다고 한다. 어느해 교보문고의 결산서류가 올라오자 “이윤을 왜 이렇게 많이 냈느냐”고 화를 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리노베이션 기간 동안에도 고객 안내소를 설치해 불편을 해소하고 인터넷교보문고와 서울 인근 영업점에 고객 서비스를 확대해 독서 소통 공간을 계속해서 열어놓을 계획이다.

광화문 글판과 교보문고의 씨앗은 모두 신용호 회장이 뿌렸다. 그 열매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신창재 회장과 교보생명과 임직원 모두의 몫이다.

“시인이 만든 언어만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순간순간이, 희망을 부르는 노래가, 역경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의지가 모두 시가 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 한줄의 시를 쓰는 세상, 저마다 한줄의 시를 노래하는 세상이 바로 광화문 글판이 꿈꾸는 세상이다.” 신창재 회장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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