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운 감사위원, 하루만에 하차..'씁쓸'

유일한 MTN기자 2010.03.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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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대한통운의 신임 감사위원인 기옥씨가 지난 15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지 단 하루만에 사임했다.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와 금호그룹의 전략경영본부 사장이라는 핵심 임원인 그는 상법상 계열사의 감사나 감사위원회에 들어설 자격이 없었다.



머니투데이방송(MTN)은 이같은 사실을 16일 오후 보도했고, 대한통운은 몇시간 지나지 않아 기옥 감사위원이 일신상의 사유로 중도 토임했다고 공시했다.

금호측은 일년 전인 작년 2월에 바뀐 법의 규정을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반응은 금호에 대해 아직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관계자들에겐 적지않은 실망이다.

일단 그룹의 CEO를 오래 역임한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한달도 아닌 일년전에 바뀐 법을 이제 와서 몰랐다면 끝인가. 개정된 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상법시행령 제 15조에 따르면 계열회사에서 일한 이사는 다른 계열사의 감사로 임명될 수 없다고 한다.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상식 수준의 규정이다.

사실 자본시장법 시행 이전 존재했던 증권거래법에서는 계열사 임원들의 감사(이후 제도변경으로 도입된 감사위원회까지)나 사외이사 임용을 금지하고 있다. 감사나 사외이사가 오너와 경영진을 견제감시해야하는데, 자기사람을 앉히면 실효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혹 기필코 자기사람을 앉히려면 2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하도록 했다.


그런데 금융지주회사법 등에서 지주회사의 임원들이 금융자회사의 임원을 겸직하는 것을 '허용'한 것처럼 해석되면서 증권거래법상의 '파이어 월'(방화벽)은 상당한 흠집이 났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상법은 계열사 임원의 감사 선임을 금하도록 시행령을 바꾸게 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감사나 사외이사는 계열사 임원이나 오너의 특수관계인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다. 숱한 M&A를 성사했고, 굵직한 경영권 분쟁을 겪은 금호의 브레인들이 이를 몰랐을까.

대한통운 (92,600원 ▼800 -0.86%)의 감사위원회 선임을 두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강행했다. 여기엔 그럴만한 계산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련법에 따르면 감사위원회의 위원이 중도사임했을 경우 최초 도래하는 주총에서 선임해야한다. 결국 그룹으로서는 '불법이 드러나면 몰랐다고 하고 한동안 공석인 채로 가고, 드러나지 않으면 조용히 가면 그만'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지켜보는 눈이 많은 삼성그룹도 아닌 금호이기에 더더욱.

감사위원에 선임된 지 하루만에 만천하에 사임을 밝혀야하는 윗사람의 심정은 별로 배려되지 않은 것 같다. 이게 금호그룹의 '매너'고 문화라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금호의 브레인들이 상식을 깨고 감사위원회 선임을 강행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대한통운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다. 채권단과 정리중인 구조조정안에서 대한통운은 뜨거운 감자다. 오너들은 대한통운만은 빼앗길 수 없다는 입장이고, 한푼이라도 더 회수를 보장받으려는 채권단은 대한통운을 외면할 수 없다.

경영진 가까이에서 기업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감사위원회에 자기 사람을 앉히고 싶은 오너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 절박함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린 모르고 한 일이니,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고 하면 많이 부족한 대응이다.

그룹의 모태였던 금호산업이 완전 자본잠식으로 거래가 정지됐다. 채권은행들의 출자전환으로 상장폐지를 막을 수 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이다. 파국을 막기 위해 은행들은 일초를 다퉈 워크아웃 플랜을 짜고 있다. 가시화되고 있는 구조조정안에 개인채권자들은 호의적이지 않다. 이들은 감사위원 선임 '해프닝'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대한통운은 올해 주총에서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처음으로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 지배구조부터 재정비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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