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뷰]저가의 유혹, 무엇이 문제인가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코리아리서치센터장 2010.03.16 16:31
글자크기
[MT뷰]저가의 유혹,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은 습기가 많은 나라다. 꽉 짜 말렸던 수건도 시간이 지나면 축축해 진다" 도요타의 전설적 최고재무책임자(CFO)중 한 명인 하나이 쇼하치(花井正八)가 긴축 경영에 대해 서슬 퍼렇게 표현한 말이다.

하나이 쇼하치는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도요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도요타 에이지 전 최고경영자(CEO)의 '가게무샤'(대역)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굳은 신임을 얻었다. 그래서 도요타 70년 역사상 단 2번 있었던 부사장에서 회장으로 직속 승진한 사례의 장본인이 된 인물이다.



하나이 CFO가 활약하던 이 시기는 전세계적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소형차 열풍이 거세게 분 탓에 가격 경쟁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였다. 도요타의 오늘날 역사는 바로 이러한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던 것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70년대를 거치면서 2%에서 6%까지 수직 상승한 도요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훗날 도요타를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한 1990년대의 약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약진 역시 뛰어난 원가 경쟁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업적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근 도요타 리콜 사태가 해외 생산 비중의 확대에 따라 이전처럼 '저비용·고품질'의 생산 체계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려워졌음에도 지속적인 원가 절감을 고집한 탓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요타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던 바로 그 요인이 결국 부메랑이 된 셈이니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상품의 질이 유지된다는 전제만 있다면 최대한 낮은 원가에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된다.



그러나 '제품 수준의 항상성'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게 달성될 수 있겠는가. 특히 경쟁 강도가 높아 제품 가격 하락의 압력에 시달리는 산업일수록 원가 절감에 대한 압력도 그만큼 가중된다. 이같이 원가 절감에 대한 과도한 압력의 부작용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도요타 사태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도요타라는 한 기업은 다시 재기한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피해는 과연 진정으로 보상될 수 있을 것인가.

또 다른 예로 의약품 분야를 들어 보자. 이른바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수천 개의 제약회사들이 동일 성분의 의약품을 절반에서 10분의1 이하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낮은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약을 그토록 높은 가격에 판매해 왔으니 인과응보가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비난은 적어도 신약의 작용 기전을 밝히고 위험성을 평가하기 위해 투입된 수많은 인력과 비용에 대한 보상이 충분한지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

저가격화를 강제함에 따라 궁극적으로 신약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를 업체들이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새롭고 복잡해지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대응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먼 시간이 흘러 그 피해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은 자명하다. 시장 경쟁에 의해서이던 아니면 사회시스템 상에 의해 규정된 것이던 낮은 원가와 좋은 상품의 질이라는 것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이 한 극단으로 흘러 소비자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조율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 또한 좋은 상품에는 적절한 대가가 수반된다는 상식을 재차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적으로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논의가 활발하다. 이 중에서는 금융회사의 과도한 레버리지(차입확대)에 대한 규제를 비롯해서 임직원에 대한 과도한 보상의 제한, 각종 수수료의 인하 등 포괄적인 것이 논의되고 있다. 무리한 사업 확장을 야기할 수 있는 과도한 인센티브에 대한 규제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공급될 수 있는 서비스, 예컨대 금융상품의 개발이나 자산관리컨설팅 등과 같은 분야에서의 질적 하락을 야기할 수 있는 서비스의 맹목적 가격 인하에 대해선 가격과 효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가격 인하에 대한 유혹은 당연히 달콤하고 단기적이며 감정적이다.

하지만 저가격화가 마진 압박으로 인한 상품의 질적 하락으로 연결될 때 소비자의 피해라는 후유증은 매우 장기 지속적이고 또 치유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