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그리스 재정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 2010.03.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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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그리스 재정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변동성이 커졌던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그리스 내부의 자구노력과 유럽연합(EU) 차원의 외부지원으로 파국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확산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는 48억유로에 달하는 추가 재정긴축안을 발표했고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적극적인 지원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 국채입찰에서는 50억유로가 성공적으로 소화되었고 국채 CDS도 고점 대비 하락하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사실 EU 16개국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불과하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그것과 유사한 국지적 현상이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과잉반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석의 스펙트럼을 좀더 확대해보면 이 문제가 단순히 규모로 판단할 수 없는 심각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경제 및 산업구조에 비춰볼 때 그리스의 자체 해결능력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리스의 제조업 비중은 10%에 채 미치지 못하며 무역수지는 GDP의 5%를 상회하는 만성적인 적자상태를 보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리스의 가격경쟁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율은 실질실효환율 기준 10% 이상 고평가되어 있으며 임금 역시 상대적으로 높다. 그리스의 단위노동비용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상승했는데 그 결과 독일과 격차가 이미 30% 정도로 확대됐다. 따라서 전면적인 구조개혁이 불가피한데 이는 긴 시간을 요하는, 그리고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둘째, 하버드의 니알 퍼거슨 교수가 '부채의 프랙탈'이라고 표현했듯이 재정위기가 비단 그리스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만델브로가 발견한 프랙탈은 카오스이론의 핵심 개념으로 흔히 자기유사성으로 번역된다. 현재 대부분 선진국이 크기만 다를 뿐 유사한 재정건전성 문제에 직면해 있다. 즉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닌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의 문제며 더 나아가 미국과 일본 역시 동일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들 국가의 재정적자는 GDP의 10%를 상회하는데 그 결과 국가채무비율도 일본의 200%를 포함해 조만간 100%를 넘어설 전망이다. 2차대전 이후 재정위기 문제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 선진국이 동시에 건전성을 위협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NBER에 발표된 케네스 로고프 교수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가부채비율이 90%를 넘어서면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신인도 문제와 더불어 성장의 불확실성이 선진국 전반에 포진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 재정위기는 다가올 거대한 격랑의 작은 신호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시스템 전체의 레버리지 수준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가 본질적으로 민간의 과도한 레버리지 문제였다면 그 이후 안정은 디레버리징, 즉 부채 축소와 재무건전성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의 다른 한쪽, 즉 정부부문에서 레버리지가 증가하고 있다면 그 기대감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시스템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레버리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월가의 속담처럼 부채문제를 부채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경제는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고 각종 지표도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레버리지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글로벌 경제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에 대한 작지만 생생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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