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스마트폰은 통역이 필요없어요"

머니투데이 정희경 통합뉴스룸 부장(부국장대우) 2010.03.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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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A씨. 외출하고 돌아온 직후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주위를 둘러보다 '부장님 전화왔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전화를 돌리자마자 거래처를 방문할 일이 떠올랐다면서 사무실을 급히 빠져 나갑니다. 정작 부장님이 넘겨받은 전화는 잘못된 번호로 확인되고 사무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됩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기업에서 회자된 에피소드의 한 토막이다. 영어를 소재로 한 당시 대화에는 상사를 찾는 해외 거래처 직원의 전화를 "유 해브 더 롱넘버"(You have the wrong number)라며 끊어버리거나 물품의 하자를 따지는데도 "오케이"(OK)를 연발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전히 영어가 두렵거나 아예 영어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이들이 있다면 반길 소식이 등장했다. 세계적 검색업체 구글이 음성 자동통역이 가능한 휴대폰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똑똑한' 전화기는 날로 진화하는 자동번역기에 음성인식 기능을 곁들인 것인데, 상용화할 경우 지금의 언어환경을 180도 바꿔놓을 수 있다.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직원은 외모까지 달리 보이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대신 우리 말을 '자동번역' 표준에 가장 근접하게 쓰는 이가 각광받게 될 것 같다.

구글은 통역도 되는 스마트폰의 상용화 시점을 '수년 내'로 잡고 있다. 최근 6년새 52개 국어 번역서비스를 할 정도로 크게 발전한 구글시스템의 개선속도가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영어에 무지한 '영맹'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일 만한 대목이지만 그들의 공(?)이 없는 게 아니다.



다름아니라 구글이 자동번역에 공을 들이게 만든 계기를 한국이 제공했다는 외신 보도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04년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한글 e메일을 자동번역해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회신 바랍니다'로 추정되는 문장이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는 'The sliced raw fish(회) shoes(신) it wishes.(바랍니다)'로 황당하게 바뀐 것이다.

구글은 자동번역 방식이 문법에 기반한 기계식에서 무수한 예문을 통해 정확도를 높이는 통계적인 접근으로 바뀌는 추세에서 자체 전산능력과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번역능력을 급진전시켰다. 얼마 전에는 이미지와 번역시스템을 연계해 휴대폰으로 촬영한 독일어 메뉴판을 영어로 번역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국경을 뛰어넘는 셈이다.

스마트폰에 속속 탑재되는 증강현실 기능은 현실세계와 부가정보를 갖는 가상세계를 합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다. 예컨대 휴대폰카메라로 거리를 보면 사진 속 상점에서 판매되는 상품정보, 음식점에서 파는 메뉴와 가격이 나타난다. 자동번역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통한다면 앞으로 비영어권 지역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음식 주문을 못해 쩔쩔매는 일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무한도전'을 입증하는 음성 자동통역을 그저 고대만 하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다. 우선은 차량 내비게이션에 길들여지면서 한번 다녀온 길도 내비 없이는 쉽게 찾지 못하는 '길치'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막강한 번역기술을 보유한 구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내비 기능이 갑자기 멈추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혼란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기우에 가까운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생각을 뛰어넘는 기술의 진보를 아직 쫓아가지 못하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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