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이 국부를 어찌 쓰고 있는가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2010.03.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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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이 국부를 어찌 쓰고 있는가


증시에서 불나방을 끌어들이는 하나의 방법이 천연자원 개발이라는 테마다. 천연자원의 급작스런 발견은 국민경제에도 저주스러운 결말로 이어지기 쉽다. 빙상 강국 네덜란드의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 이를 잘 보여준다. 네덜란드는 1959년 북해에서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발견했지만 결국 제조업의 쇠락, 높은 실업률, 그리고 재정위기를 경험해야 했다. 왜 그랬을까.

천연가스 수출에 따른 급작스런 무역흑자는 한편으로는 통화팽창과 수요증가로 물가상승을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환율절상도 병행하여 수출제조업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지출효과). 수요가 늘어난 천연가스산업과 내수산업으로 근로자가 집중되면서 임금상승이 겹쳐진 것도 경쟁력 손실에 기여했다(자원이동효과). 정부 탓도 컸다. 가스수출로 번 돈을 사회복지에 과다하게 사용하면서 임금상승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복권 당첨의 통계가 그렇듯이 역량을 넘어서는 부를 거머쥔 국가들의 결말은 대체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자원빈국인 우리에게는 모두 남의 얘기처럼 들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지출효과와 자원이동 효과를 적절히 조합하면 우리의 현실이 이해된다. 지출효과는 부동산, 수입재, 그리고 사교육에 집중되고 자원이동효과는 미미하여 실업을 양산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네덜란드병은 천연자원에 그치지 않는다. 좀더 일반화하면 네덜란드병은 외환의 대규모 유입이 낳는 부정적 결과를 통칭한다. 국민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외환의 유입은 새로 발견한 천연자원을 수출하거나, 외국원조 또는 외국인투자가 집중되거나, 또는 무역수지가 기록적 흑자를 지속하는 경우에 생겨난다.

무역수지가 기록적 흑자를 보이는 국가라면 일본을 앞설 나라가 없다. 하지만 현재 일본경제는 어떠한가. 세계 언론은 재정위기의 다음 타깃으로 일본을 지목한다. 일본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가 200%를 넘어 국채올림픽이 있다면 압도적인 금메달감이다. 일본 정부는 세금의 26%를 이자 갚는 데 쓴다. 1981년 이래 28년간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일구어내 그만큼 대외채권을 누적해온 국가에서 어찌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일까.



무역흑자는 당연히 일본 기업과 근로자의 역할이 컸다. 일본 국민은 쌓이는 재산을 우선은 큰 아이디어 없이 할 수 있는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다. 그리고 버블이란 파국적 결말을 얻었다. 그 사이 일본 정부도 민간이 쌓은 국부를 열심히 빌려 썼다. 이후 이어진 혹독한 불황 속에서도 기업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기상천외한 개발사업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손쉽게 만들어냈고 이는 국채와 지방채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주목할 점은 일본 국채의 90%는 자국민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위기가 외채위기로 비화되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가계와 기업이 수십년 간 성실히 차곡차곡 쌓아놓은 재산을 고스란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가로챈(?) 셈이 되기 때문이다. 세금을 올리면 해결된다고 하나 국민 입장에서는 분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정부는 개인이나 기업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빚을 갚지 못한다면 채권자 돈을 강탈해서 갚으면 된다.

국민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외환의 유입은 득보다 실이 많은 것일까.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16세기에 신대륙으로부터 밀려들어오는 자원을 바라보면서 "부에 대한 만족감은 그 소유나 사치스런 지출이 아니라 현명한 활용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기세가 대단한 수출대기업, 지속적 무역흑자, 시원하게 뚫린 도로망, 화려한 지방청사, 공기업 부채, 끊임없는 대형 국책사업들이 던지는 공포감을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한다고 탓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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