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지 못한 임직원 떠나라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2010.03.0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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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 스카우트·커리어 마켓 … 기업인사 새바람

지난달 26일 KT&G 새 사령탑에 임명된 민영진 사장은 취임식 직후 서둘러 집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불과 몇 시간 뒤, 민 사장은 본부장(수석전무ㆍ전무ㆍ상무) 인사를 발표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새로 '별'을 단 이들을 사장실로 불러들였다.

다음날인 2월27일, 토요일 휴무임에도 민 사장과 본부장 7명은 서울 시내 한 호텔방에 모였다. 민 사장은 이 자리에서 '보직 스카우트' 제도를 도입한다고 선언했다. 간부들에게 함께 일할 직원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주돼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통보였다.



본부장들은 현장에서 자신과 함께 일할 실장(상무보)을 직접 뽑아야 했다. 호텔방 한편에 둘러앉은 본부장들은 실장급 인재들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우수한 인재를 끌어가기 위한 신경전이었다. 늦은 밤 부하직원을 불러 회유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요일인 2월28일, 이제는 '선택받은' 실장들이 나설 차례였다. 실장들은 부장급(1급) 선발을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 같은 '스카우트' 경쟁은 공휴일인 3월1일까지 계속됐다.



2일, KT&G (102,200원 ▼14,700 -12.57%)는 조직개편 및 간부 인사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기존 287개부서 중 54곳을 통폐합해 233개로 줄였다. 지난해 말 4679명 수준이던 전체 인원은 그대로 두되, 겹치거나 불필요한 조직은 과감히 없앴다.

신규선임에서 제외된 고위 임원급 10명은 지난 달 말 퇴임했다. 이번 스카우트 제안을 받지 못한 44명은 별도 인사조치 될 예정이다.

KT&G 관계자는 "이번 인사 조치로 직원들이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이라며 "미래경영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고 책임과 보상이 분명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인사시스템 혁신 바람은 과거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탈바꿈한 KT&G 뿐 아니라 공기업 및 금융권에서도 이미 감지되고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 (19,850원 0.00%)은 지난해 공개경쟁 인사시스템을 도입하고, 처ㆍ실장급이 자신의 밑에서 일할 팀장 및 지점장급 부하를 결정하도록 했다. 사내에 만연한 각종 인사 청탁과 '줄서기'를 일소하기 위한 '혁신 전도사' 김쌍수 사장의 조치였다.



부장급 이상 직원만 1000명이 넘어 수작업이 불가능한 탓에 올해부터는 아예 온라인 시스템을 마련했다. 인사 대상자에게 5~6지망까지 희망부서를 온라인에 등록하도록 하고, 인사권자가 고르도록 했다. 아무 곳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한 직원은 무보직으로 교육연수원에 입소해 '김쌍수 식' 혁신 프로그램인 TDR(Tear Down & Redesign)을 수행해야 한다.

현대카드·캐피탈도 지난 2007년부터 '커리어 마켓'이란 새로운 인사제도를 가동했다.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은 직원들이 스스로 마케팅을 펼치는 '오픈 커리어존'과 각 부서에서 인재를 공모하는 '잡 포스팅존'으로 나눠 인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최근까지 200명 이상의 직원이 이 제도를 통해 부서를 옮겼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기존 인사제도가 회사 필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인사발령을 내고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따르도록 했다면, 이 제도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라며 "직원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도 최근 임원, 부서장에 대한 물갈이 인사 후 팀장 67%를 교체하면서 부하 직원을 직속 상사가 선택토록 했고, 한국관광공사도 부하직원선택제로 임명했다. 주택금융공사도 일선 부서장 선임권을 상임이사에게 위임하는 대신, 상임이사 평가를 매년 실시키로 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배노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성과주의 문화를 조직에 불어넣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느낄 과도한 불안감 및 갈등요인 증가에도 신경 써야 한다"며 "직원들이 개인 실적에 몰입해 팀웍이 약해지고, 조직이 단기성과 중심으로 운영될 위험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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