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 애플, 아바타, 토요타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2010.02.2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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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테스] 애플, 아바타, 토요타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한때 80년대 일본 경제의 부상을 배경으로 미국 경제에 대비한 일본 경제체제의 우월성이 거론된 적이 있다. 일본 기업의 자금지원을 받아 세계은행에서 이른바 '주거래은행'(Main Bank)을 기반으로 한 일본 금융시스템의 장점을 명망있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연구토록 하기도 했다. 막상 그 연구성과가 출간된 90년대 초반 무렵에는 일본 경제가 금융위기로 휘청대고 있었고, 일본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의 특수성과 우월성을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모양이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주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금융위기에도 일본 제조업체의 경쟁력은 잔고장 없기로 유명한 일본 자동차의 명성만큼 견고했다. 쉬운 예로 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 유학생들이 귀국길에 소니 전자제품을 장만해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즉 삼성, LG의 일본 전자제품에 대한 경쟁력은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비교 자체가 우스웠다.



이제 그 튼튼하던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토요타의 리콜사태로 일본 제조업체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일본 자동차업체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포말로 사라지고 있다. 소니는 삼성에 이미 추월당했고, 이건희 회장은 일본은 더이상 두렵지 않다고 공언한다. 더불어 이제 과거 일본 금융시스템의 장점을 거론하는 사람은 더이상 찾기 어렵다.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경제의 견인차는 미국이었다. 미국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자 이번에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의 장점과 우월성을 설파하는 논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2008년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금융위기에 봉착했다. 당연히 미국식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규제와 정부의 복귀가 거론되고, 일각에서는 일본식, 중국식 등 아시아적 개입주의의 득세가 이야기되기도 한다. 중국과 미국의 G2체제는 이미 현실이기도 하다. 과연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일본이 그러했듯 미국 경제도 서서히 몰락하는 것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금융위기는 분명히 미국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낸 면이 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금융규제와 감독체계상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일 뿐 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과 경제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아시아적 개입주의는 여전히 선진적 경제체제가 될 수 없다.

시사적인 증거는 최근 세상을 흔들어놓은 '애플 아이폰'과 '아바타'다. 어떤 식으로든 미래 산업에 영향을 미칠 대사건이라는 데 모든 이가 동의한다. 두 제품 모두 미국이 배출한 발명이다. 금융위기로 타격을 받았다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미래를 바꿔놓을 만한 대혁신의 거의 유일한 본산이다. 우연인가? 그렇지 않다.

'아이폰'과 '아바타'를 만들어낸 두 주인공의 이력을 살펴보자. '아바타'를 만들어낸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뒤 캘리포니아 지방대학을 자퇴한 대학 중퇴생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bs)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입양된 뒤 대학 1학년을 채 마치지 않은 중퇴생이다. 중퇴 이유는 2명 모두 같다. 대학의 전공공부가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사회가 제공하는 정규 성장과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성장과정을 스스로 선택한 이단아들이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중 한 나라에 태어났다면 이들은 청년백수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단아의 상상력이 허용되고 그 결과 모범생은 꿈조차 꿀 수 없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미국의 경제체제는 지녔다. 권위주의가 지배하고, 여기저기 정부의 지도와 개입이 만연하며, 공정한 경쟁보다는 인맥 등 네트워크가 사회 곳곳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문화로는 모방하기 어려운 특성이다. 일본 경제의 몰락은 이같은 미국 경제체제의 소프트웨어를 결국은 창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이 진단이 옳다면 우리의 미래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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