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재판소'는 조선인과 상관없는 관료조직으로 조선인 당사자는 그저 재판의 대상이었다. 현재 우리 법원도 국민이 그 구성에는 전혀 관여할 수 없는 특수 관료조직이고 국민은 그저 심판을 받는 입장일 뿐이다. 혹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에 국회가 관여하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판사임명권을 갖는 점에서 국민이 그 조직 구성에 관여한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한두 다리 건너간 매우 의심스런 공권력에 국민이 무조건 승복해야 상황임에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허구다. 인류 최고(最古) 성문법인 4000년 전 함무라비법전도 잘못된 판결을 내린 판사는 파면하고 무거운 벌금을 물리는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제도에서는 판사가 엉터리 판결을 내린다 해도 이를 징계하거나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하급심 판결이야 상소를 통해 다툰다고 하지만 결국 같은 조직에 의한 재판(再判)일 뿐이다. 판사 탄핵 역시 실효성이 없었으며, 판사의 진급도 오판 유무보다 상급자에게 잘 보였느냐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헌법에는 판사는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양심'이라는 추상적 단어로부터도 공정한 객관적 재판기준이 나올 수 있다는 개념법학자들의 난해한 논리보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불공정 재판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약 위반이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당사자는 그 피해를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재판 결과 입은 피해를 모두 배상받는다는 확신도 없다. 다른 한편 계약위반이나 불법행위로 '재미를 좀 본' 상대방은 그 이익을 이미 기정사실로 한 터라 새로 배상책임을 부과받는 경우 무척 당황한다. 이 경우 만약 판사가 체면이나 보신에 연연하는 경우라면 정확한 피해액에 못미치는 배상을 판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거나 양쪽으로부터 반발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어정쩡한 판결은 부당한 정보를 낳고 질서를 훼손해 결국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우리 사법부의 진정한 개혁은 국민 공동체에서 선정된 다수의 만장일치 평결에 의한 배심재판권의 보장과 판사 선거제도 도입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 국민들도 미국의 사례들처럼 시골 한 무명의 젊은 변호사가 주(州)대법원장을 연임한 관록의 후보를 누르고 주대법원장에 당선되는 그러한 짜릿함을 맛봐야 하지 않을까.
"국민은 주인이에요. 주인이 일꾼한테 '일 잘못했으니 그만 가소' 하면 두말이 없는 것이에요"라는 해공 신익희 선생의 어록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