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호 채권단은 책임 다했나

머니투데이 서명훈 기자 2010.02.1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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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금호 채권단은 책임 다했나


지난 9일 금호아시아나 (10,390원 ▼20 -0.19%)그룹 오너들이 주식을 채권단에 담보로 내놓으면서 유동성 위기가 일단락됐다. 연휴 이전에 자금지원이 이뤄졌고 협력업체들도 연쇄 도산 공포에서 한 숨 돌리게 됐다. 사태를 수습한 채권단은 박수 받는 위너(Winner)였고 버티다 주식을 내놓은 금호그룹은 루저(Loser)였다.

하지만 시계를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로 한번 돌려보자. 당시 금호그룹은 대한통운이 매물로 나올 때를 기다리며 현금을 쌓아놓고 있었다. 물류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던 금호그룹으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우건설은 인수합병(M&A) 대상에 이름조차 올라 있지 않았다.



대우건설 인수를 타진한 것은 오히려 채권단 쪽이었다. 은행들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었다. 이미 확보해 놓은 현금과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통할 수 있으니 금호그룹 입장에서는 피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문제는 인수조건이었다. 애초 캠코는 50%+1주를 매각할 계획이었다. 금호그룹 역시 여기에 맞춰 자금조달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캠코가 전략을 바꿨다. 자신이 보유한 72.1% 지분을 모두 인수하는 기업에게 가점을 부여하겠다는 형태로 바뀌었다. 입찰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상황이었다.



금호그룹이 무리하게 풋백옵션을 주고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 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급전을 융통하려다 보니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조원이 채 안되는 돈을 지원한 캠코는 몇 백%의 수익률을 거뒀고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일 수 있었다.

캠코는 ‘자산 매각시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조항을 충실히 이행한 셈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은행들은 전폭적인 지원 대신 채권 회수에 나섰다. 나아가 금호그룹의 알짜 회사의 경영권을 사실상 채권단이 행사하게 됐다.


경영진은 이런 변수까지 감안했어야 했다. 채권단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대비해야했다. 그것까지도 금호 오너와 경영진의 책임이다.

게임의 방향은 기울었지만 그래도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다. 농부에게 땅이 삶의 터전이듯 기업가에게 회사가 삶의 터전이다. 경주 최 부자네는 농부가 곤궁해지는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았다고 한다. 금호 경영권을 가져간 채권단의 경영 철학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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