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에 발목잡힌 금호, 앞날은?

서명훈 기자, 기성훈 기자 2010.02.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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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수순갈까?… 협력업체 줄도산 막아야

금호아시아나 (10,410원 ▲10 +0.10%)그룹 일부 오너들이 사재출연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아 정상화 계획이 완전 백지화될 위험에 놓이게 됐다. 금호그룹이 결국 ‘형제의 난’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해 와해될 위기에 놓이게 된 것.

이에 따라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 등 주력 계열사들도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이 아닌 법정관리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주력 계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면 일반 상거래 채권을 보유한 협력업체들도 피해를 입게 된다. 가뜩이나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협력업체들은 줄도산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호그룹, 법정관리 가나… 협력업체 줄도산 막아야
일단 사재출연 동의서는 8일 오전으로 예정된 채권단 전체회의 전까지는 제출돼야 한다. 제출시한을 넘기게 되면 금호그룹은 결국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현재 마련된 회생계획안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정상화를 꾀한다는 게 골자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미적거리다 보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며 "협상이 주말을 넘긴 만큼 다른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정관리에 돌입하더라도 당장 경영권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지금까지 법원은 경영 연속성을 위해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경영진을 교체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금호그룹의 경우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 문제가 된 만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협력업체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자율협약의 경우 채권단이 보유한 금융채권에 대해서만 일부를 탕감하고 상환일정을 조절하게 된다. 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협력업체가 보유한 상거래채권에 대해서도 탕감 및 상환일정이 연장된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협력업체들이 무더기로 도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금융감독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만약 금호가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을 모두 합쳐서 채무상환 일정을 협의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상거래채권자들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금호그룹의 협력업체는 1000여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광주·전남지역에 몰려 있다. 금호타이어를 비롯해 금호산업 산하 금호고속, 금호건설, 금호석유화학 등이 이 지역에 터전을 잡은 탓이다. 이들 지역의 협력업체는 금호타이어 87개, 금호고속 48개, 금호석유화학 120개 등 총 270개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유성 산업은행장의 행보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애초 사재출연 동의서는 설 연휴가 ‘데드라인’이었는데 갑자기 빨라졌다는 것. 사재출연 동의서는 설 연휴 이전까지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데드라인이 1주일 앞당겨져 금호 일가가 협의할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관측이다.

민 행장의 행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협력업체의 자금난이 생각보다 심각해져 줄도산을 막기 위해 오너일가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는 해석이다. 최근 광주·전남지역 일부 국회의원들이 신속한 해결을 주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나머지는 사재출연에 미온적인 오너들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말 그대로 ‘자율’에 맡겨서는 설 연휴 전에 동의서 제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최후 통첩을 앞당겼다는 설명이다.

◇금호그룹, ‘형제의 난’ 결국 발목
결국 이번 사재출연 합의 실패는 금호그룹 문제의 핵심이 '형제의 난'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줬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박삼구 금호그룹 명예회장과 그의 장남 박세창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를 제외한 나머지 오너 일가는 사재 출연 동의서 제출을 거부했다. 금호 오너 일가에는 박 명예회장 부자, 고(故)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박재영씨, 고 박정구 명예회장의 장남 박철완 전략경영본부 부장,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장남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 등이 포함된다.

지난해 7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박찬구 전 회장은 최근 사재출연을 받아들이는 대신 경영 일선에 복귀시켜 달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듣기에 따라서는 경영에 복귀하면 사재 출연에 동의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박 전 회장 부자는 현재 금호석화 지분 15.27%를 보유하고 있다.

그간 금호그룹 오너 일간의 ‘형제갈등’에서 박 명예회장 측과 보조를 맞추던 박재영 씨와 박철완 부장의 사재출연 거부도 어느 정도 예상됐다.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는 자신들에게까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물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박재영 씨는 금호석화와 금호산업의 주식을 4.27%와 0.79%를 갖고 있다. 박철완 부장은 지난달 초 금호산업 지분 대부분을 처분했다. 139만2553주(지분율 2.27%)를 팔아 보유지분은 2.84%에서 0.57%로 줄었다. 금호석화 지분은 10.69% 가지고 있다.

오남수 전 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도 지난해 말 열린 그룹 경영정상화 방안 기자회견에서 “통제할 수 있는 주식에 대해서는 내놓고 (박찬구 전 회장 주식 등) 통제할 수 없는 주식이나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3세 주식에 대해서는 채권단과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사재출연 동의서를 받는데 실패한 진짜 이유는 박찬구 전 회장 측과 벌였던 ‘형제의 난’ 때문인 셈이다. 금호그룹 측은 "대주주들 간의 사재 출연 여부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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