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갈등 왜… '지우기'에 대한 공포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심재현 기자 2010.02.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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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vs친박 대해부](중)공천권은 계파 형성·유지 수단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은 공천권에서 비롯한다.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인데, 일단 서로 갈라서자 무한확장 양상을 보이고 있다."(한나라당 당직자)

공천권은 친이·친박계 모두에 있어 절대가치다. 두 계파를 형성·유지시키는 핵심 수단이다. 국회의원들은 4년마다 선거를 통해 생존을 재확인해야 한다. 공천권은 의원들의 '밥줄'인 셈이다.



공천권 행사의 문화와 절차는 해당 정당과 정치권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핵심 잣대 중 하나다. 한국 정치권에서 공천권은 당내 권력자에 집중돼 있다. 공천권의 합리적인 시행과 절차에 고심해 온 미국, EU(유럽연합) 등과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정치 신인이 등장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지우기'에 대한 공포= 한국 정치에서 정권 및 당권 장악은 때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권력을 잡은 세력이 경쟁세력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이를 잘 보여주는 비극이다. 경쟁 상대를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지우기 전략'은 한국 정치를 옥죄고 있는 대표적인 후진성이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친박계는 18대 총선 때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의 '친박 공천 학살'에 반발하며 더욱 똘똘 뭉쳤다"며 "친이·친박계 모두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상대방에게 밀려선 안 된다는 절박감과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8대 총선 때 공천탈락에 반발한 친박계는 경남 사천에 출마한 이 전 사무총장의 낙선운동을 벌였고, 그는 결국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패배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친박계 인사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을 때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말했다. 불신의 증폭이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똑같이 공천 기준으로 '쇄신'을 내걸었다. 이 과정에서 두 당 모두 공천파동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랐다. 공천에서 탈락했던 친박계가 대거 살아 돌아왔다. '박근혜 마케팅' 덕이었다. 박 전 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시에선 12개 지역구 가운데 8곳에서 친박 깃발이 꽂혔다.

정치권 한 인사는 "4·9 총선에서 친박계가 생환하지 못했다면 그것으로 친박은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 입장에서는 '친박의 귀환'을 막지 못한 게 불행의 싹이 된 셈이다.

◇현실권력과 미래권력의 다툼= 친이·친박간 '세종시 대전'은 지우기에 대한 공포를 씨줄로, 미래권력을 향한 의지를 날줄로 삼고 있다.

친박계의 부활은 박 전 대표의 힘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적어도 영남권에서 박 전 대표의 눈 밖에 날 경우 생존을 보장받기 힘들다는 인식이다. '주이야박'(낮엔 친이, 밤엔 친박), '월박'(친박계로 넘어옴)이란 신조어마저 등장했다.

친이계는 박 전 대표가 이처럼 세종시 문제에 정면승부를 걸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세종시 원안 수정을 국가백년대계로 삼은 마당에 "설마 판을 깰까"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 과정에서 '친이 대 친박·야당'이라는 묘한 대립전선이 형성됐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박 전 대표의 시계가 '차기 대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차피 지난 대선과 총선과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면 기회 있을 때 승부를 걸고 싶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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