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은행장들이 모이는 공식 행사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강 행장이 지난 1월5일 있었던 '범금융인 신년 인사회'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다.
대한민국 최대 은행인 리딩뱅크 수장으로 각 행사에서 상석(上席)을 차지했던 강 행장.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직을 사퇴하고, 금융감독원의 국민은행 감사 일지가 유출되는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장기화되고 있는 강 행장의 잠행(潛行)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또 그의 이런 행보가 KB국민은행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라응찬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행사 시작 30분 전부터 자리를 잡았다. 민유성 산은금융그룹 회장, 신상훈 신한금융그룹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등도 얼굴을 보였다.
강 행장은 지난달 22일 진동수 금융위원장의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에도 불참했다. 금융위원장과 금융 CEO들이 만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라서 라 회장을 비롯한 주요 시중은행장들이 대거 참석한 것과 대조적이다.
강 행장은 지난 25일 은행의 사외이사 제도개선 방안을 확정짓기 위해 열린 은행연합회 이사회에는 어렵게 나왔다. 강 행장은 이사회가 열리기 전,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참석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신 회장은 "당연히 나와야 된다"고 해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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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 대외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직 사퇴부터 수검일지 유출 파문까지 감독당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겠냐는 것.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리는 만큼 아예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삼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시중은행장은 "남의 집 일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오는 게 좀 그렇지 않냐"고 말했다. 다른 은행장도 "금융당국과 불편한 상황에 정부가 주최한 행사에 선뜻 나올 수 있겠냐"며 "문제가 조용해지면 공식 석상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인 일정이 있어 참석을 못하는 것 아니겠냐"며 "일부러 강정원 행장을 배제시키는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 역시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최근 상황을 감안할 때 강 행장이 공식석상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CEO의 행보가 회사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강 행장의 잠행이 장기화될 경우 KB국민은행의 경영에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우려는 KB국민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이 6800억원(신용카드부문 4000억원 포함)으로 잠정집계 돼 5위로 떨어진 것을 볼 때 기우(杞憂)만은 아닐 것이다.
강 행장이 잠행을 끝내고 하루 빨리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KB국민은행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매우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