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저축銀 가계대출 비중 1.06%, "애걔"

머니투데이 오수현 기자 2010.02.0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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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저축은행 살길은...]<2>"지역 서민금융회사로 거듭나라"

"서민금융 확대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서민금융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저축은행에 대한 당국의 규제 또한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것으로 보여 고민이 큽니다."

서울 소재 한 대형저축은행 은행장은 최근 서민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의지를 이렇게 전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저축은행 업계는 금융당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저축은행 감독체계 개선'도 결국 업계의 서민금융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감독체계 개선은 대형저축은행과 중소형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를 이원화하는 게 골자. 이는 대형저축은행이 그동안 서민금융을 등한시하고 고수익·고위험 자산에 과도하게 투자해 서민금융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당국의 인식에 따른 것이다.

◇서민금융 강화, 왜=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5개 저축은행 전체 여신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말 현재12%. 전체 여신의 84%에 해당하는 중소기업대출 중 약 3분의1은 자영업자 대출로 집계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용이 낮은 개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로 봤을 때 저축은행 업계 전체 여신의 30~40%가 서민금융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가계대출규모가 과거에 비해 급감해 서민금융기관으로서 면모를 잃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성용 금융감독원 중소서민금융서비스본부장(부원장보)은 지난해말 열린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2003년에는 저축은행 총 여신에서 소매금융(소액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웃돌았지만 현재 10%대로 낮아졌다"며 "소매금융시장의 수익성도 상당한 만큼 저축은행들이 (이를) 키울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러시앤캐시가 지난해 자산 1조원으로 1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올린 것이 이를 보여준다"는 것.


특히 가계대출에 대한 대형저축은행의 외면은 심각한 수준이다. 일례로 한국저축은행의 경우 전체 여신에서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6%, 부산저축은행은 1.91%에 불과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가계대출 비중을 늘려 대형사들도 서민금융에 기여하도록 감독방향을 설정하고 있다"며 "시중은행과 보험사, 기업 등이 미소금융재단에 자금을 출연하면서 간접적으로 서민금융 확대에 일조하는 상황에서 저축은행 업계도 그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금융, 어떻게 규정하나=저축은행 업계에선 그러나 당국에서 강조하는 '서민금융'의 정의가 명확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소액신용대출과 서민금융을 동일시하는 시각에 대해 불만이 높다.

서울 소재 대형저축은행 은행장은 "고리의 소액신용대출을 서민금융으로 볼 수 있겠냐"며 "서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자금을 가급적 저렴한 금리에 빌려주는 게 진정한 서민금융"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저축은행 업계에선 최근 금융당국과 연구기관, 저축은행업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가 출범한 만큼, TF에서 저축은행의 서민금융 기여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평가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전세보증금대출이나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금대출도 서민금융 평가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한 대형저축은행 여신심사담당 임원은 "정부에선 서민금융을 규정할 때 대출액수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자금용도를 기준으로 서민금융 여부를 판단하는 게 보다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인센티브는=당국에선 대형저축은행에 대한 규제강화를 천명했지만, 이와 동시에 서민금융을 확대하는 저축은행에 제공할 과감한 인센티브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에선 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규모를 전체 여신의 30%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을 바라는 분위기"라며 "이 정도 수준은 돼야 업계에 당근을 제시할 명분이 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 업계에선 서민금융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당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신 '당근'을 확실히 챙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기회에 영업점 설치 규제완화나 비과세상품 취급 허용 등 업계의 오랜 요구사항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한 저축은행장은 "당국 요구대로 저신용자 신용비중을 대폭 끌어올린 저축은행에는 영업점 신규 설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며 "전 금융권을 통틀어 영업점 설치에 규제를 받는 곳은 저축은행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업계 숙원이던 비과세상품 취급도 허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비과세상품 취급이 가능한 신협 등 상호금융기관에 밀려 예금고객 유치에 어려움이 크다는 입장이다. 실제 저축은행의 총수신 잔액은 지난 9월말 현재 69조7500억원으로 전년말보다 14.5% 늘어났다. 반면 신협(32조9367억원) 은 같은 기간 24% 증가했다.

◇당국은 고심 중=당국에선 업계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이다. 특히 영업점 설치 규제의 경우 무작정 완화했다가 무리한 영업확대로 자산이 부실화되고, 저축은행 간 소모적인 경쟁만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비과세상품 취급 허용도 세제정책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당국에서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양성용 금감원 부원장보는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하기 위해 논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아직 결정된 사안은 없다"며 "서민금융 비중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일괄적으로 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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